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D. 전설·지명유래

화도에는 원래 '화도'가 없었다 - 남양주 옛 지명들.. 무슨 뜻일까

pfinder903 2026. 9. 11. 15:47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9

화도에는 원래 '화도'가 없었다 - 남양주 옛 지명들, 화도·조안·수동은 무슨 뜻일까

 

 

 

남양주에 살다 보면 이상하게 입에 붙지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화도읍 사시죠?" 하고 물으면 "네, 마석 살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수동면'이라고 적힌 표지판 아래에서 사람들은 "물골안 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조안면은 한자로 새 조(鳥)에 편안할 안(安), '새가 편안히 머무는 마을'이라는 그림 같은 뜻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 이름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명은 대개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런데 남양주의 읍·면 이름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그중 상당수가 생각보다 훨씬 최근에, 그것도 마을 사람들의 입이 아니라 행정 서류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화도·조안·수동 세 이름을 중심으로, 남양주의 지명이 만들어진 서로 다른 세 가지 방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화도에는 원래 '화도'가 없었다 - 남양주 옛 지명들, 화도·조안·수동은 무슨 뜻일까

 

 

 

남양주라는 이름부터가 '방위'입니다

 

남양주(南楊州)는 말 그대로 '양주(楊州)의 남쪽'이라는 뜻입니다.  1963년 양주군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승격되고 일부 지역이 서울로 편입되면서 양주군은 남북으로 갈라졌고, 1980년 4월 1일 양주군 남부 일대가 남양주군으로 분리 신설되었습니다.  그 결과 '방위를 뜻하는 글자 + 다른 지자체 이름'이라는, 전국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형태의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양주시를 '북양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남양주라는 이름 자체가 마을에서 자라난 이름이 아니라, 행정 편의에서 나온 이름인 셈입니다.  이 점을 먼저 알아 두면 아래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훨씬 잘 이해됩니다.

 

 

 

1914년, 지도 위에서 이름이 만들어지다

 

남양주 지명 이야기의 결정적 분기점은 1914년입니다.  이해 일제는 전국의 부·군·면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했습니다.  흔히 '부군면 통폐합'이라 부르는 조치인데, 작은 면 여럿을 하나로 묶으면서 자연히 새 이름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합쳐진 두 면 이름에서 한 글자씩 떼어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남양주의 여러 읍·면 이름이 바로 이 방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런 이름은 뜻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땅의 옛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애초에 땅을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도(和道) - 위 길과 아래 길을 합치다

 

화도가 대표적입니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을 기준으로, 위쪽 21개 동리를 상도면(上道面), 아래쪽 18개 동리를 하도면(下道面)이라 불렀습니다.  1914년 4월 1일 이 두 면을 합치면서 '두 도(道)면을 화합(和)시킨다'는 뜻으로 화도면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즉 화도의 '도'는 길 도(道)이고, '화'는 합한다는 뜻의 화(和)입니다.  화도라는 마을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두 면을 합치기 위해 만들어 낸 이름인 것입니다.  이후 화도면은 1963년 1월 1일 지둔리·운수리·송천리 세 개 리를 새로 생긴 수동면에 내주고 10개 법정리로 정리되었고, 1991년 12월 1일 화도읍으로 승격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여전히 '마석'이라 부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도 화도읍 주민 상당수가 자기 동네를 '마석'이라 부른다는 점입니다.  철도역 이름도 마석역이고 버스 정류장도 마석정류소입니다.  마석은 화도읍 마석우리에서 온 이름으로, 옛날부터 맷돌이 많이 나던 곳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磨石과 摩石으로 엇갈리게 적히지만, 어느 쪽이든 '돌을 간다'는 뜻은 같습니다.

 

한편 화도라는 이름을 두고는,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지역을 억지로 화합시킨다는 명분으로 일제가 붙인 조어 지명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이런 평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단정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화도가 주민들의 입에서 자라난 이름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백 년이 지나도록 '마석'을 밀어내지 못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화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름이 남양주에는 여럿 있습니다.  와부읍은 1914년 와공면(瓦孔面)의 '와'와 초부면(草阜面)의 '부'를 따서 만들었고, 진접읍은 진벌면(榛伐面)과 접동면(接洞面)에서, 진건읍은 진관면(眞官面)과 건천면(乾川面)에서 각각 한 글자씩 가져왔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미금(渼金)이라는 이름도 미음면과 금촌면을 합쳐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와부읍 역시, 주민들은 면 소재지 이름인 '덕소'로 더 많이 부릅니다.  행정 지명과 생활 지명이 따로 노는 현상이 남양주에서는 유난히 흔한데, 그 뿌리를 따라가면 대개 1914년의 그 통폐합에 닿습니다.

 

 

 

수동(水洞) — '물골안'을 한자로 옮기다

 

수동면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산이 아름답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흘러, 주민들이 '물골안'이라고 불렀습니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 안쪽이라는, 뜻을 그대로 담은 우리말 이름입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5호에 따라 양주군과 가평군의 일부를 떼어 새 면을 만들면서, 이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겨 수동면(水洞面)이라 하였습니다.  두 이름을 잘라 붙인 조어가 아니라, 이미 있던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번역한 경우인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지역 계곡을 찾는 사람들은 '수동계곡'만큼이나 '물골안'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씁니다.

 

 

 

수동팔경이 알려 주는 옛 풍경

 

수동면 일대에는 예부터 여덟 곳의 명승을 꼽는 '수동팔경'이 전해집니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과 큰 바위가 어우러진 석수장림(石水長林), 조선 후기 문인 농암 김창협이 「유만취대기」에 남긴 만취대 일대, 비룡마을의 구름을 노래한 비룡채운(飛龍彩雲), 입석리의 물과 모래를 가리키는 황소명사(黃沼明沙) 등입니다.

 

법정리 이름들도 대부분 물과 산에서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입석리(立石里)는 큰 선돌이 있던 마을, 운수리(雲水里)는 구름이 모여 물이 되는 마을, 송천리(松川里)는 하천가 소나무 마을이라는 뜻으로 소개됩니다.  다만 이런 풀이는 향토 자료에 실린 전승이므로, 확정된 어원이라기보다 오래 전해 온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합니다.

 

 

 

조안(鳥安) — 새가 편안한 마을이라는 이름

 

조안면은 1986년 4월 1일 와부읍 조안출장소가 면으로 승격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관할 법정리인 조안리에서 왔습니다.

 

남양주 지역 향토 자료가 소개하는 조안리의 지명 유래는 이렇습니다.  새소리가 좋고 물이 좋아, 가던 길을 멈추고 눌러앉아 살게 된 마을이라는 것입니다.  박씨 성을 가진 선조가 이곳을 지나다 새소리에 반해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한자 鳥安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아름다운 유래담입니다.

 

 

 

그런데 '새'는 새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유래를 정면으로 다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연구원 이기봉은 조안리 일대의 옛 이름에 주목합니다.  조안2리의 옛 이름은 '새울'인데, 이는 '새재 밑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재'는 문경새재와 같은 말로, 높고 험하지만 짧아서 빨리 넘을 수 있는 지름길 고개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조안면에는 평해길을 돌아가지 않고 예봉산과 예빈산 사이를 곧장 넘는 고갯길이 있었습니다.  '울'은 골짜기 마을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문제는 이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새'를 새 조(鳥)로, '울'을 골 동(洞)으로 옮겨 조동(鳥洞)이라 적은 것입니다.  그러자 훗날 사람들이 그 한자를 그대로 풀어 "옛날 이곳에 새가 머물다 날아갔다"거나 "선조가 새소리를 듣고 정착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이 견해의 요지입니다.  이기봉은 마을 안내판에 적힌 유래가 바로 이런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여기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향토 자료의 전승도, 지명학적 해석도 각각의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지명이 우리말에서 한자로, 다시 한글 풀이로 옮겨 다니는 사이에 원래 뜻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자라날 수 있다는 점만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이 블로그의 전설·지명유래 편이 계속 확인해 온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퇴계원은 퇴계 이황과 관계가 없습니다

 

비슷한 오해가 하나 더 있습니다.  퇴계원(退溪院)이라는 이름을 보고 퇴계 이황을 떠올리는 분이 많지만, 두 이름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나란히 전해집니다.  이곳에 있던 '도제원'이 '토원'으로, 다시 퇴계원으로 변했다는 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오던 길과 얽혀 '퇴조원(退朝院)'이라 불렸다는 설, 그리고 퇴조원이라는 이름이 연안이씨 이조온의 이름과 겹쳐 이를 피하려고 퇴계원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는 설입니다.

 

이름 끝의 '원(院)'은 조선시대에 공무로 오가는 사람들이 묵던 국영 숙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느 설을 따르든, 이곳이 오래전부터 사람과 소식이 오가던 길목이었다는 사실만은 공통으로 가리키고 있는 셈입니다.  퇴계원은 1989년 출장소에서 면으로, 2019년 10월 21일 읍으로 승격했습니다.

 

 

 

이름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지명이 서류 위에서 만들어지는 일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호평동은 1989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호만리의 '호'와 평동리의 '평'을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이 일대의 더 오래된 이름은 판곡(板谷), 우리말로는 '늘을'이었는데, 널을 켜던 골짜기라는 뜻으로 전해집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더 익숙한 '호평'이 사실은 40년이 채 되지 않은 조어인 셈입니다.

 

더 최근에는 2017년 12월 18일 가운동이 다산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비슷한 시기에 시 이름 자체를 '다산시'로 바꾸자는 논의까지 있었습니다.  행정·재정 부담, 다산이라는 지명이 다른 지역에도 쓰인다는 점, 신도시 주민들의 여론 등을 이유로 무산되었지만, 백 년 전 지도 위에서 화도와 와부가 만들어지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 마석(화도읍): 경춘선 마석역에서 내리면 바로 화도읍 마석우리 일대입니다.  역 이름과 행정 지명이 다른 대표적인 곳이라, '화도읍'과 '마석'이라는 두 이름이 함께 쓰이는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물골안(수동면): 수동면 일대 계곡길을 따라 축령산·서리산 방면으로 이어집니다.  도로 표지판에는 '수동'으로, 마을 상호와 안내판에는 '물골안'으로 적힌 경우가 많아 두 이름을 나란히 확인하기 좋습니다.
  • 새재와 조안리(조안면): 경의중앙선 운길산역·팔당역에서 가깝습니다.  예봉산과 예빈산 사이로 넘는 옛 고갯길이 이 지역 지명 이야기의 핵심 무대입니다.  다만 조안면은 상수원보호구역·개발제한구역이 넓게 걸쳐 있어 시설이 많지 않으니, 가벼운 답사 위주로 계획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 남양주시립박물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로 121.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과 1월 1일·설날·추석 당일 휴관, 관람료 무료(문의 031-590-8600).  지역 향토사와 옛 생활자료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방문 전 홈페이지에서 운영 상황을 한 번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자료로 확인하려면: 남양주시청 홈페이지의 '지명유래' 항목과 디지털남양주문화대전(namyangju.grandculture.net)에서 읍·면·리별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화도는 두 면을 합치며 만든 이름이고, 수동은 '물골안'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이름이며, 조안은 우리말 이름이 한자로 적히는 사이에 뜻이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이름입니다.  세 이름은 각각 조어, 번역, 오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양주의 남쪽'이라는 남양주라는 이름과, 퇴계 이황과 무관한 퇴계원, 그리고 오늘도 새로 만들어지는 다산동까지 얹으면, 남양주 지도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이름 이야기책이 됩니다.

 

이렇게 이름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서른 편의 여정이 마무리됩니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에서 출발해 조선왕릉과 왕실 원찰을 걷고, 경춘선 철길과 일제강점기를 지나, 산과 강에 남은 전설과 지명까지 왔습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궁금증이었습니다.  남양주에 살면서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다산 유적지와 조선왕릉, 오래된 절과 성지가 사실은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 그 물음 하나로 첫 글을 썼습니다.

 

서른 편을 쓰고 나니, 달라진 것은 남양주가 아니라 이곳을 바라보는 제 눈이었습니다.  늘 지나던 고갯길에도, 아파트 단지 이름에도, 버스 정류장 안내판 한 줄에도 누군가 살아온 시간이 겹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내가 사는 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이 여정에서 배웠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걸어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접지만, 남양주에는 아직 걸어 보지 못한 길이 훨씬 많이 남아 있습니다.   폐위된 임금이 잠든 광해군묘, 오성과 한음의 그 한음이 잠든 조안면 송촌리,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떠난 남양주 사람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다음 또 다른 이야기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 화도읍 / 와부읍 / 조안면/ 수동면(남양주시) / 진건읍 / 호평동 / 퇴계원 읍
  • 나무위키 - 화도읍 / 진접읍 / 남양주시
  • 문화일보 - <48> 남양주 조안면의 새재 [이기봉의 우리땅이야기]
  • 경기신문 - [창룡문] 退溪院(퇴계원)과 退朝院(퇴조원)
  • 다산국악학원 자료방 - 화도·수동 등 남양주 지명 분석
  • 남양주시청 - 남양주소개 > 남양주의 역사 > 지명유래
  • 전국 박물관·미술관 지도 - 남양주시립박물관 관람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