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D. 전설·지명유래

'천마'인데, 정작 산에 말이 없다 - 천마산 지명 유래, 하늘을 나는 말 이야기

pfinder903 2026. 9. 10. 09:15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5

'천마'인데, 정작 산에 말이 없다 - 천마산 지명 유래, 하늘을 나는 말 이야기

 

 

"천마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하늘을 나는 흰 말이 그려진 그 유명한 그림, 국보 '천마도'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남양주에도 등산객들 사이에서 수도권 명산으로 손꼽히는 '천마산'이 있습니다.  필자도 처음 이 산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하늘을 나는 말과 관련된 전설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한자로 옮겨 보니, 그 안에는 '말(馬)'이라는 글자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산은 대체 왜 '천마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하늘을 나는 말'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천마'인데, 정작 산에 말이 없다 - 천마산 지명 유래, 하늘을 나는 말 이야기
호평동에서 오르는 등산 코스에서...

 

 

 

손이 석 자만 더 길었다면 하늘을 만졌을 것이다

 

남양주 천마산의 지명유래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 말, 이성계가 이 산이 매우 높아 손이 석 자만 길어도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 하여 천마산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고 적고 있다.  나무위키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한다. "가는 곳마다 산이 높지만, 이 산은 하늘에 손이 닿을 듯하구나(手若摩天)"라고 이성계가 감탄했고, 그 말에서 하늘 천(天)에 문지르다·닿다는 뜻의 마(摩)를 더한 천마산(天摩山)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산세가 험하고 능선이 산정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있어, 어느 방향에서 올려다보아도 봉우리가 유난히 높아 보이는 지형은 이런 감탄이 나올 법도 하다.

 

 

 

이 산 이름에는 애초에 '말(馬)'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남양주 천마산의 한자 표기는 '하늘 천(天)'에 '문지를 마(摩)'를 쓴 천마산(天摩山)이다.  말을 뜻하는 마(馬)가 아니라, 손으로 무언가를 문지르거나 어루만진다는 뜻의 마(摩)다.  즉 이름의 본래 뜻은 '하늘을 만지는 산'이지 '하늘을 나는 말의 산'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천마'라는 단어에서 곧바로 말을 떠올리는 것은,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天馬圖)가 워낙 유명한 탓이 크다.  그 그림은 실제로 하늘을 나는 듯한 흰 말을 그린 것이고, 한자도 하늘 천(天)에 말 마(馬)를 쓴 천마(天馬)다.  발음은 똑같지만, 남양주 천마산의 '마'와는 완전히 다른 글자인 셈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산의 이름은 '하늘을 나는 말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나는 말과는 무관한 산'이라는 반전을 품고 있다.

 

 

 

왕이 되기 전 한 남자의 감탄, 사실일까

 

그렇다면 이성계가 실제로 이 산 앞에서 그런 말을 남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까.  안타깝게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공식 문헌에서는 이 일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나무위키, 위키백과 모두 "~라고 전해진다", "~라 하여 비롯되었다고 한다"는 식으로 서술할 뿐, 구체적인 연대나 출처를 밝히지는 않는다. '고려 말'이라는 시점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전 함경도 지역 장수로 활동하던 시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될 뿐, 그가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로 남양주의 이 산을 지나쳤는지는 어느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다.  조선을 건국한 임금의 이름이 지명유래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어서, 이 이야기 역시 후대에 덧붙여진 구전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볼 필요가 있다.

 

 

 

'하늘을 만지는 산'이라는 이름, 남양주에만 있지 않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마산(天摩山)'이라는 같은 한자 이름의 산이 개성에도 있다는 점이다.  개성의 천마산은 송악산 북쪽에 자리하며, 대흥산성과 박연폭포, 관음사 등으로 유명한 산이다.  이 산의 이름은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의 시문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되었다.  이규보는 이성계보다 백 년도 더 앞선 인물이다.  다시 말해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을 '천마산'이라 부르는 방식 자체는 이성계 개인의 일화와 상관없이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지명 관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남양주 천마산의 유래담이 굳이 이성계라는 유명한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이미 존재하던 '하늘에 닿는 산'이라는 이름에 후대 사람들이 더 설득력 있고 기억하기 쉬운 이야기를 붙인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엔 정말 '말'이 등장하는 천마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 송파구와 경기 하남시 경계에도 '천마산'이 있는데, 이 산은 한자부터 다르다.  하늘 천(天)에 말 마(馬)를 쓴 천마산(天馬山)이다.  이 산의 지명유래는 병자호란 때 활약한 무신 임경업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다.  임경업이 개롱리 부근에서 전장에 나가려는데 마땅한 말이 없어 난감해하던 차에, 이 산에서 뛰쳐나온 말 한 마리가 그의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마산, 말미, 말산이라고도 불렸고 마천동이라는 동네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이름은 같은 '천마산'이라도, 남양주의 산은 '하늘을 만지는 산'이라는 뜻이고 하남·송파의 산은 실제로 '말이 나오는 산'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게다가 두 산은 위치도, 주인공도, 한자도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남양주 천마산에서도 은근히 '말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데는, 이렇게 이름이 같은 다른 산의 전설과 경주 천마총의 유명세가 함께 겹쳐진 영향이 있는 셈이다.

 

 

 

산신에게 화합을 비는, 뜻밖에 새로운 전통

 

남양주에는 매년 봄 천마산 자락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행사가 있다.  남양주문화원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2026년에 스물일곱 번째를 맞았으니, 처음 시작된 해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폐례, 헌례, 음복례 순서로 전통 의례 방식을 따르며, 지역의 번영과 시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 산신제가 조선시대나 그 이전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998년 무렵 지역 문화 전통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되어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비교적 근래에 자리 잡은 행사에 가깝다.  큰 산을 신령한 존재로 여기고 제사를 지내는 산신 신앙 자체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예로부터 전해 오는 오래된 풍속이지만, '천마산 산신제'라는 이름의 이 정기 행사는 그 오랜 신앙을 현대에 다시 조직한 사례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름의 그늘, 이웃 마을 지명에도 남다

 

천마산의 존재감은 산 이름을 넘어 이웃 마을의 지명에도 흔적을 남겼다.  화도읍 인근의 묵현리는 천마산과 마치고개 아래에 자리해 산그늘이 짙게 드리우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먹고개, 먹갓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옮기며 묵동, 묵현리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높은 산 하나가 볕이 드는 시간까지 좌우할 만큼 마을 가까이에 우뚝 서 있었다는 뜻이니, 천마산이 이 일대 사람들의 생활 감각 속에서 얼마나 뚜렷한 지형지물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높이마저 자료마다 다르게 적힌 산

 

천마산의 정확한 높이를 두고도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810.3m로 적고 있는 반면, 위키백과와 여러 등산 정보 사이트에서는 812m로 소개한다.  몇 미터 안팎의 오차이지만, 같은 산을 두고도 조사 시점이나 측량 기준에 따라 기록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양주시 호평동·오남읍·화도읍에 걸쳐 있으며, 광주산맥에 속한다.  1983년 8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8월 시립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과정은 앞서 다룬 '천마산이 스키장이 되기까지' 편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 있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천마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오남읍·화도읍에 걸쳐 있으며 해발 810~812m 정도다(자료마다 표기가 조금씩 다르다). 대표적인 등산 코스는 네 가지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호평동 코스는 왕복 약 3시간, 편도 2.96km로 초입은 완만하지만 정상에 가까울수록 급해진다.  관리소 코스는 2.9km로 가장 짧지만 '깔딱고개'라 불리는 급경사 구간이 있고, 천마산역 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사가 꾸준한 편이며, 가곡리·팔현리 코스는 계곡을 따라 걸으며 봄철 야생화를 볼 수 있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경춘선 평내호평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호평동 코스로 접근하거나, 경춘선 천마산역에서 내려 바로 천마산역 코스로 오를 수 있다.  시립공원이라 별도의 입장료는 없지만, 오후 4시 이전 하산과 취사·야영 금지 등 안전 수칙은 지켜야 한다.  매년 봄에는 천마산 자락에서 남양주문화원 주관으로 산신제가 열리니, 시기가 맞는다면 지역의 오래되고도 새로운 이 전통 행사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글을 마치며

 

'천마산'이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나는 말을 떠올리지만, 정작 남양주 천마산의 한자에는 말(馬)이 들어 있지 않다.  이 산의 이름은 이성계가 그 높이에 감탄해 붙였다고 전해지는 '하늘을 만지는 산', 천마산(天摩山)이다.  그런데 이 감탄의 일화는 공식 문헌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이미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개성의 천마산이라는 선례를 생각하면 이성계 개인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지명 관습에 후대의 이야기가 덧붙었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서울·하남 경계의 천마산은 정말로 '말(馬)'이 등장하는 임경업 장군의 전설을 품고 있어, 같은 이름 안에 전혀 다른 두 갈래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과 전설, 그리고 이름이 같을 뿐 서로 다른 여러 산의 이야기를 함께 놓고 보니, 지명 하나에도 이렇게 여러 겹의 역사와 오해가 쌓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남양주를 상징하는 또 다른 지명, '두물머리'에 담긴 뜻을 살펴보려 한다.  이미 여러 편에서 스쳐 지나간 이 지명이, 정작 어디서 왔고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는 아직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자리에 붙은 이름의 사연을 다음 편에서 이어 가겠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천마산(天摩山)
  • 위키백과 — 천마산 (남양주)
  • 나무위키 — 천마산(남양주)
  • 나무위키 — 천마산 (동음이의어 목록)
  • 위키백과 — 천마산 (하남)
  • 머니투데이 — [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천마산 대흥산성과 개성의 사찰유적
  • 위키백과 — 천마총
  • 국가유산포털 —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 경원일보 — 남양주시, '제27회 천마산 산신제' 개최… 시민 안녕과 화합 기원
  • KoreaHike — 천마산 등산코스, 가는 방법
  • 다음카페(영서국악학원) — 화도 수동 등 지명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