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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객은 왜 지방관의 교과서를 썼을까 — 정약용과 목민심서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4유배객은 왜 지방관의 교과서를 썼을까 — 정약용과 목민심서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책이 있다. 《목민심서(牧民心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은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 즉 '목민관(牧民官)'이 백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짚은 실무 지침서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쓴 정약용은 벼슬은커녕 죄인의 몸으로 전라도 강진 땅에 갇혀 있었다. 한 번도 고을 수령을 맡아본 적 없는 유배객이, 어떻게 이토록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방 행정의 교과서를 써낼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18년이라는 시간 속에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신유박해로 삼형제의 운명이 갈..

형제의 이름으로 순교하다 — 정약종과 마재성지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3형제의 이름으로 순교하다 — 정약종과 마재성지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호를 곁에 낀 작은 마을 마재에 가면 여느 성당과는 사뭇 다른 성당 하나를 만나게 된다. 콘크리트와 첨탑 대신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성당, 그리고 마당에 서 있는 예수상과 성모상은 놀랍게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다. 이름도 낯설다, '거룩한 부르심의 땅 성가정 마재성지'. 어째서 이 조용한 강마을에, 그것도 한옥으로 지은 성지가 자리하게 되었을까. 답은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丁若鍾)에게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여유당에서 태어난 정약용과,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남긴 둘째 형 정약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이 형제들 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이 신앙을..

형은 바다로, 아우는 강진으로 — 정약전과 자산어보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2 형은 바다로, 아우는 강진으로 — 정약전과 자산어보 정약용이 강진에서 그 오랜 유배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뜻밖에도 그 답은 그가 유배 이후 단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한 한 사람에게 있다. 바로 손암(巽庵) 정약전, 그의 둘째 형이다. 나주 율정점(밤남정)의 한 주막에서 눈물로 헤어진 두 형제는 그 뒤로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편지로만 그리움을 나누었고, 형은 “어둡고 무섭다”고 느껴 이름조차 바꿔 부른 섬, 흑산도에서 조선에 없던 책 한 권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 책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으로 꼽히는 『자산어보(玆山魚譜)』다. 남양주 마재마을에서 태어나 다산 정약용과 함께 자란 ..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자리,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1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자리,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규장각의 젊은 학자가 어느 날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채에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유당(與猶堂)'. '여유'는 흔히 쓰는 '여유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라'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잘나가던 사람이 왜 하필 이런 이름을 골랐을까요? 그 답은 바로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마을에 있습니다. 두물머리 옆 마재마을에서 나고 자라다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재마을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