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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에는 원래 '화도'가 없었다 - 남양주 옛 지명들.. 무슨 뜻일까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9화도에는 원래 '화도'가 없었다 - 남양주 옛 지명들, 화도·조안·수동은 무슨 뜻일까 남양주에 살다 보면 이상하게 입에 붙지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화도읍 사시죠?" 하고 물으면 "네, 마석 살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수동면'이라고 적힌 표지판 아래에서 사람들은 "물골안 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조안면은 한자로 새 조(鳥)에 편안할 안(安), '새가 편안히 머무는 마을'이라는 그림 같은 뜻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 이름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명은 대개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런데 남양주의 읍·면 이름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그중 상당수가 생각보다 훨씬 최근에, 그것도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곧 울음소리였던 새 — 광릉숲 크낙새 이야기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9이름이 곧 울음소리였던 새 — 광릉숲 크낙새 이야기 남양주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빨간 머리에 검은 몸을 한 새 캐릭터 둘이 방문객을 맞습니다. 이름은 '크크'와 '낙낙이'. 남양주시를 상징하는 새인 크낙새를 본떠 만든 캐릭터입니다. 시내 곳곳의 안내판과 홍보물에서도 이 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새를 실제로 본 사람은, 남한에 거의 없습니다. 크낙새가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것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 그마저도 자료마다 연도가 엇갈립니다. 30년이 훌쩍 넘도록 아무도 보지 못했고, 이제는 남한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상징으로만 남고 실물은 사라진 셈입니다. 이름부터 낯섭니다. '..

이름이 다섯 개나 되는 곳 — 두물머리라는 이름에 담긴 뜻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8이름이 다섯 개나 되는 곳 — 두물머리라는 이름에 담긴 뜻 지도 앱에 "두물머리"를 검색하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가 뜬다. 그런데 조금만 옛 자료를 뒤지면 같은 자리를 가리키는 이름이 하나 더, 아니 서너 개 더 나온다. 이수두(二水頭), 양수두(兩水頭), 합수머리, 두머리... 어느 것이 진짜 이름이고 어느 것이 별명일까. 그리고 애초에 이 지명 이야기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두물머리가 남양주 조안면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남양주 사람들의 일상적 풍경이자 다산 정약용이 평생 눈에 담고 살았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유명한 지명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 이름이 품고 있는 사연을 따라가 본다..

'천마'인데, 정작 산에 말이 없다 - 천마산 지명 유래, 하늘을 나는 말 이야기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5'천마'인데, 정작 산에 말이 없다 - 천마산 지명 유래, 하늘을 나는 말 이야기 "천마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하늘을 나는 흰 말이 그려진 그 유명한 그림, 국보 '천마도'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남양주에도 등산객들 사이에서 수도권 명산으로 손꼽히는 '천마산'이 있습니다. 필자도 처음 이 산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하늘을 나는 말과 관련된 전설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한자로 옮겨 보니, 그 안에는 '말(馬)'이라는 글자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산은 대체 왜 '천마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밤중에 들린 종소리, 알고 보니 물방울 소리 - 수종사, 종소리의 전설의 진실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5밤중에 들린 종소리, 알고 보니 물방울 소리였다 - 수종사, 종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의 진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중턱,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수종사(水鍾寺)라는 절이 있다. '물 수(水)'에 '쇠북 종(鍾)'—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조선의 임금 세조가 한밤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에 잠을 깼고,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종은 없고 대신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절에서 나온 유물들의 제작 연대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전설이 말하는 시점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 어긋남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수종사의 진짜 역사가 더 흥미롭게 드러난다. 이번 글부터는 전설과 지명..

제사를 지내야 잡히던 멧돼지 — 축령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6제사를 지내야 잡히던 멧돼지 — 축령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에 우뚝 솟은 산이 하나 있다. 해발 879미터, 울창한 잣나무 숲으로 유명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린 축령산이다. 그런데 이 산 앞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지는 게 있다. '축령(祝靈)'이라는 두 글자, 풀어보면 '빌 축(祝)'에 '신령 령(靈)' - 그러니까 '신령에게 빈 산'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떤 절박함으로 이 산에서 빌었기에 그 행위 자체가 산의 이름이 되었을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축령산에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

나루터가 사라진 자리 - 조안면 근대화 이야기, 두물머리 주변의 변화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4나루터가 사라진 자리, 스튜디오도 문을 닫았다-조안면 근대화 이야기, 두물머리 주변의 변화 남양주에서 두물머리 쪽으로 차를 몰다 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건 대부분 카페와 펜션인데, 그 사이사이로 유기농 채소를 파는 작은 매대와 다 쓰러져가는 옛 영화 세트장 표지판이 불쑥 등장한다는 것이다. 강가 마을에 왜 유기농업이 자리를 잡았을까. 그리고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는 영화 스튜디오는 왜, 그리고 어떻게 문을 닫았을까. 답은 같은 곳에서 나온다. 바로 반세기 넘게 이 땅을 묶어 온 규제다. 이번 글에서는 조안면이라는 하나의 행정구역이 나루터 마을에서 규제 지역으로, 다시 유기농업과 영화산업의 땅으로, 그리고 최..

물길이 막히고 기차가 멈춘 자리에서 — 정약용의 고향, 마재마을의 근현대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3물길이 막히고 기차가 멈춘 자리에서 — 정약용의 고향, 마재마을의 근현대 경춘선 운길산역이나 팔당대교를 지나 조안면 능내리로 접어들면, 길가에 늘어선 카페와 주말이면 줄지어 선 자동차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정약용이 태어나고, 강진 유배에서 돌아와 여생을 보낸 마재마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진다. 200년 전 한강 뱃길로 이어지던 이 조용한 강마을은, 그 사이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정약용 개인의 생애나 여유당이라는 건물 하나가 아니라, 마재마을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난 100여 년 동안 무엇을 겪었는지를 따라가 보면, 뜻밖에도 큰물과 철도와 댐, 그리고 규제라는 낯선 이름들이 등장한다. ..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1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남양주에서 가장 높은 산, 천마산(天摩山)에 한때 스키 리프트가 다섯 기나 걸려 있었다고 하면 믿어질까. 지금은 등산객들이 능선을 따라 조용히 오르내리는 이 산 남쪽 기슭에는 1980년대 초부터 2020년대 초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스키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이곳은 왜, 그리고 어떻게 문을 닫게 되었을까. 신령한 산으로 여겨지던 천마산이 한때 위락지로 개발되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산에 새겨진 남양주의 근현대 개발사를 따라가 본다.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 천마산이라는 ..

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1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남양주 시민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46번 국도, 호평동에서 화도읍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마치고개’라는 소박한 이름의 고개가 있다. 지금은 차들이 무심히 오가는 이 고개 아래, 76년 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약용의 형제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하고, 왕들의 무덤이 들어서고, 근대 철도가 마을의 모습을 바꿔놓았던 이 땅에도 6·25전쟁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다만 그 기록은 유적지의 안내판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의 남양주—당시에는 아직 ‘양주군’의 일부였던 이 땅이—전쟁의 세 해(1950~1953)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