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C.근현대사

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pfinder903 2026. 9. 7. 17:01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1

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남양주 시민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46번 국도, 호평동에서 화도읍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마치고개’라는 소박한 이름의 고개가 있다. 지금은 차들이 무심히 오가는 이 고개 아래, 76년 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약용의 형제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하고, 왕들의 무덤이 들어서고, 근대 철도가 마을의 모습을 바꿔놓았던 이 땅에도 6·25전쟁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다만 그 기록은 유적지의 안내판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의 남양주—당시에는 아직 ‘양주군’의 일부였던 이 땅이—전쟁의 세 해(1950~1953)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공식 기록과 조사 자료를 따라가 본다.  특히 6·25전쟁처럼 지역별 자료가 엇갈리거나 드문 주제는 여러 공식 자료를 교차 확인하며 ‘확인된 사실’과 ‘조사·보도된 내용’을 구분해 표기했다.

 

 

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남양주”가 아직 없던 그해 여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시작했을 때 지금의 남양주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었다.  지난 글(No.20)에서 살펴보았듯 이 일대는 경기도 양주군에 속해 있었고, ‘남양주’라는 이름은 1980년 4월 1일에서야 양주군에서 분리·신설되어 생겨난다.  그러나 행정구역의 이름과 무관하게, 이 땅은 전쟁 초반부터 가장 먼저 전선에 휩쓸린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사흘 만에 무너진 전선, 퇴계원을 거쳐 남으로

 

서울 북쪽의 관문인 의정부를 지키던 국군 제7사단은 개전 당일부터 북한군 제1군단(제3·4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의 공격을 받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시 제7사단은 병력이 4,500여 명에 불과했고, 하루를 온전히 버티지 못한 채 6월 26일 오후 의정부가 북한군에 점령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군 일부는 포천에서 내촌을 거쳐 퇴계원으로 우회해 철수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오늘날 남양주 관내인 퇴계원이 개전 이틀 만에 이미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석 달의 다른 세상, 그리고 고개에서 벌어진 일

 

서울이 함락된 뒤 이 일대는 9월 말까지 석 달 가까이 북한군과 지방 좌익 세력의 통치 아래 놓였다.  이 시기의 구체적인 지역 기록은 흔치 않지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6월 15일 진실규명을 결정한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가평·포천·양주·파주·고양군 일대, 1950년 7월 22일~10월 5일)에는 지금의 남양주시 진건읍 일대(당시 진건면)에서 벌어진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  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50년 9월 2일 무렵 연행된 주민 한 사람이 9월 25일 무렵 호평동과 화도읍의 경계인 ‘마치고개’에서 다른 주민 10여 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창고에 갇혀 있던 70~80명 가운데 일부가 마차에 실려 끌려가 총살당했다는 것이 조사 내용이다.  인민군의 퇴각을 앞둔 시점에 ‘반동’으로 지목된 이들이 처형된, 전국 각지에서 되풀이된 비극의 한 자락이 이 고개에도 새겨져 있는 셈이다.

 

 

 

 

9월 28일 이후, 또 다른 이름의 희생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북상하면서, 이번에는 반대 방향의 비극이 뒤따랐다.  위키백과와 관련 보도에 따르면 1950년 10월부터 1951년 초 사이 경찰은 북한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주민과 그 가족들을 체포해 사살했고, 그 규모는 10세 미만 어린이 23명을 포함해 460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국 AP통신(2008년 12월 6일자 찰스 핸리·장재순 기자)과 한겨레(2008년 5월 22일자)의 보도에 따르면,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5월 이 사건에 대해 국가의 사과와 희생자에 대한 배상을 정부에 권고했다.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이 땅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폭력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공식 조사 기록은 담담히 전하고 있다.

 

 

 

 

왕실의 절이 불타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라 유서 깊은 건물도 앗아갔다.  앞서 살펴본 세조의 원찰 봉선사는 1951년 한국전쟁 중 전각 14동 150여 칸이 모두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  500년 가까이 왕실의 안녕을 빌어 온 절도 전쟁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이 절이 다시 지붕을 얹기까지는 이후로도 20년 가까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서울을 되찾기 위해 한강을 건너다

 

전쟁 초반의 혼란이 지나가고, 1951년 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서울 이남으로 밀려난 이른바 1·4후퇴 이후, 반격의 무대에도 남양주가 등장한다.  1951년 3월 7일, 서울 재탈환 작전인 ‘리퍼 작전(Operation Ripper)’에 투입된 미 제25사단이 지금의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일대 한강에서 도하를 감행했다. ㅊ오전 6시 15분경 제35연대 제3대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해 오전 7시 40분경 도하를 마쳤고, 그날 정오 무렵 양수리 고지를 확보했다.  이 부대는 이후 서울~춘천 도로까지 진출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3월 중순 서울을 다시 찾았다.  정약용의 흔적이 남은 두물머리 인근 강변이, 서울 수복이라는 전쟁의 큰 물줄기가 지나간 자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라진 기차역과 살아남은 숲

 

전쟁의 흔적은 크고 작은 방식으로 이 땅 곳곳에 남았다.  앞서 이야기 나눈 경춘선 금곡역은 6·25전쟁 중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야 다시 세워졌다.  반면 세조의 능림으로 지정되어 550년 가까이 벌목이 금지되었던 광릉숲(B02편 참고)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근현대의 격변 속에서도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지켜냈다.  같은 전쟁이 어떤 곳에서는 잿더미를, 어떤 곳에서는 뜻밖의 보전을 남긴 셈이다.

 

 

 

 

전쟁을 기억하는 두 개의 비석

 

전쟁이 끝난 뒤 이 땅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기억을 새겼다.  1986년 3월 7일, 리퍼 작전 35주년에 맞추어 와부읍 도곡리에는 ‘미 제25사단 한강도하 기념비’가 세워져 참전 용사들의 공적을 기리고 있으며, 지금도 인근 학교의 추념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디지털남양주문화대전에는 ‘반공희생자 합동위령비’ 항목도 등재되어 있어, 이 지역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또 다른 기억의 자리가 있음을 알려준다.  서로 다른 사연을 품은 두 비석이, 같은 땅 위에서 같은 전쟁을 각자의 언어로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 미 제25사단 한강도하 기념비 —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일대, 두물머리·양수리와 가까운 한강변에 있다.  앞서 소개한 다산생태공원·물의정원에서 멀지 않아 함께 둘러보기 좋다.  상시 개방되어 있으나, 정확한 위치와 관람 편의시설은 방문 전 확인을 권한다.
  • 봉선사 —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으며, 전쟁으로 전소되었던 자리에 1969~70년 새로 지어진 큰법당(국내 최초 철근콘크리트 법당)을 직접 볼 수 있다.
  • 마치고개 — 46번 국도(경춘로) 상 호평동과 화도읍의 경계에 있다.  별도의 안내판이나 위령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오가는 길에 잠시 이 땅의 아픈 역사를 떠올려 보는 정도로 답사하기를 권한다.

위 시설들의 정확한 위치·개방시간 등은 남양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정보서비스 등 공식 자료로 방문 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글을 마치며

 

6·25전쟁은 흔히 38선과 낙동강, 인천상륙작전 같은 굵직한 지명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전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남양주의 골목과 고개, 절과 기차역에도 예외 없이 흔적을 남겼다. 사흘 만에 무너진 방어선, 석 달의 낯선 통치와 그 안에서 벌어진 두 방향의 비극, 그리고 서울을 되찾기 위해 강을 건넌 병사들. 이 모든 장면이 지금 우리가 걷는 땅 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다음 글에서는 전쟁 이후 개발의 시대로 접어든 남양주, 스키장이 된 천마산의 근현대 개발사(No.22)로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의정부전투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 위키백과 — 남양주 민간인 학살 사건
  • AP (Charles J. Hanley·Jae-soon Chang, 2008.12.6) — Children 'executed' in 1950 South Korean killings
  • 한겨레(김성환, 2008.5.22, 인터넷아카이브) — 남양주 민간인학살 국가사과 권고
  • 기호일보 — [남양주 자랑스러운 보훈기록] 10. 한국전쟁과 美 25사단 한강 도하, 서울 재탈환한 ‘리퍼 작전’
  • 경기신문 — 남양주 평내고등학교, ‘미25사단 한강도하 기념비’ 방문 추념식과 플로깅
  • 국가유산 지역문화 콘텐츠(ncms.nculture.org) — 미 제25사단 한강 도하 기념비
  • 디지털남양주문화대전 — 반공희생자 합동위령비 / 미 제25사단 한강도하 기념비 (표제어 확인, robots.txt 제한으로 본문은 2차 자료로 교차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