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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없이 피어난 믿음 - 마재성지 순례기, 조용히 걷는 신앙의 길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3선교사 없이 피어난 믿음 - 마재성지 순례기, 조용히 걷는 신앙의 길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를 따라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면 승용차 열댓 대가 겨우 들어설 좁은 주차장과 마주친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은 화려한 첨탑이 아니라, 기와지붕을 얹은 나지막한 한옥 한 채다.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라 불리는 마재성지, 정확한 이름으로는 '성가정 마재성지'다. 능내리 두물머리 인근, 정약용 유적지에서 걸어서도 갈 만한 거리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이 왜 전국에서 순례객을 불러 모으는지는 골목 끝에 다 다라서야 알게 된다. 로마에서 사제 한 명 건너오기도 전에, 이 마을의 몇몇 선비들이 책을 구해 읽고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

동방 제일의 전망이라 불린 사연 - 운길산 수종사와 두물머리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2동방 제일의 전망이라 불린 사연 - 운길산 수종사와 두물머리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다.” 조선의 한 임금이 한밤중에 들었다는 이 소리 하나가,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절의 이름을 만들었다.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8부 능선에 자리한 수종사(水鐘寺)는 이름부터 물(水)과 쇠북(鐘)을 함께 품고 있다. 왜 산속 절 이름에 ‘물’과 ‘종’이 나란히 붙었을까? 그 답은 세조가 겪었다는 하룻밤의 이야기 속에 있다.다만 이 전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이야기인지는 뒤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절이 품고 있는 다른 이야기들 - 조선 왕실이 발원한 탑들, 다산 정약용이 사랑한 풍경, 그리고 지금도 두물머리를 ..

왕의 위패를 지키러 세운 절, 현판은 한글로 걸렸다— 세조의 원찰, 봉선사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1왕의 위패를 지키러 세운 절, 현판은 한글로 걸렸다— 세조의 원찰, 봉선사 지난 이야기에서는 세조의 능인 광릉을 550년 동안 지켜 온 숲, 광릉숲과 국립수목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숲 초입, 능보다 먼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자리에 절 하나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여느 산사와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대웅전 자리에 걸린 현판 앞에 서면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한자도 아니고 흘림체 붓글씨도 아닌, 또박또박한 한글로 "큰법당"이라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 절만 유독 한글로 현판을 달았을까요. 그 답을 찾아가려면 시간을 천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절의 이름 자체가 임금의 뜻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함께..

왕의 무덤이 지켜낸 숲 — 광릉숲과 국립수목원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0왕의 무덤이 지켜낸 숲 — 광릉숲과 국립수목원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지하철 노선으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550년 넘도록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숲이 남아 있다면 믿어질까. 남양주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광릉숲 이야기다. 이 숲의 한가운데에는 조선 제7대 임금 세조의 무덤인 광릉이 자리하고 있다. 목재가 유일한 연료였던 시대, 도성에서 지척인 이 숲은 어떻게 벌목도 개간도 피해 원시림에 가까운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죽은 왕'에게 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능이, 살아 있는 숲의 550년을 지켜낸 것이다. 강무장에서 시작된 숲의 운명 광릉숲의 특별한 지위는 세조가 묻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