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B. 문화유적 탐방

선교사 없이 피어난 믿음 - 마재성지 순례기, 조용히 걷는 신앙의 길

pfinder903 2026. 9. 4. 22:30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3

선교사 없이 피어난 믿음 - 마재성지 순례기, 조용히 걷는 신앙의 길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를 따라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면 승용차 열댓 대가 겨우 들어설 좁은 주차장과 마주친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은 화려한 첨탑이 아니라, 기와지붕을 얹은 나지막한 한옥 한 채다.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라 불리는 마재성지, 정확한 이름으로는 '성가정 마재성지'다.  능내리 두물머리 인근, 정약용 유적지에서 걸어서도 갈 만한 거리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이 왜 전국에서 순례객을 불러 모으는지는 골목 끝에 다 다라서야 알게 된다.  로마에서 사제 한 명 건너오기도 전에, 이 마을의 몇몇 선비들이 책을 구해 읽고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세계 가톨릭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미사 시간이 되면 좁은 성당 마당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채운다는 이곳을, 직접 걸어 보기로 했다.

 

 

 

마재성지 순례기, 조용히 걷는 신앙의 길

 

 

 

선교사 없이 시작된 믿음

 

1784년, 마재나루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정약전·정약용 형제는 사돈이자 벗인 이벽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처음 전해 들었다.  당시 조선의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학, 곧 서양 학문과 사상을 새로운 눈으로 살펴보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었고, 천주교 교리 역시 그런 지적 호기심의 연장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우연한 뱃길 대화는 조선 천주교사의 첫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마재는 외국인 선교사가 단 한 명도 밟지 않은 땅에서 신앙 공동체가 자라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세계 가톨릭 2천년 역사에서 평신도들이 스스로 교리서를 구해 읽고 신앙을 받아들여 공동체를 이룬 경우는 매우 드물며, 이 점이 마재를 특별한 자리로 만든다.

 

 

 

한 마을에서 갈라진 형제들의 길

 

정약현·정약전·정약종·정약용 네 형제가 나고 자란 마재는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로 다른 운명으로 갈라졌다.  정약종은 이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각각 유배 길에 올랐다.  지금 성지 안에 서 있는 도마성당과 약종동산은 그 가운데서도 순교의 길을 택한 정약종 일가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한 마을, 한 형제 사이에서도 순교와 유배와 학문이라는 서로 다른 결말이 갈렸다는 점은, 이곳을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신앙과 시대가 부딪힌 현장으로 보게 만든다.

 

 

 

한 가정에서 나온 성인 셋, 복자 둘

 

정약종의 부인 유조이(체칠리아)와 아들 정하상(바오로), 딸 정정혜(엘리사벳)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해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정약종 자신과 아들 정철상은 그보다 늦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복자품에 올랐다.  한 가정에서 성인 셋과 복자 둘이 나온 사례는 한국 교회사를 통틀어도 흔치 않아, 이곳이 훗날 '성가정 성지'라는 이름을 얻는 근거가 됐다.  정약용 형제들 각자의 학문과 유배 이야기를 앞선 글들에서 다뤘다면, 이번 이야기의 중심은 한 개인이 아니라 대를 이은 한 가정 전체가 신앙을 지켜 낸 과정이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잊혔던 자리, 다시 성지로

 

정약종 순교 이후 이 자리는 오랫동안 평범한 마을 땅으로 남아 있었다.  이곳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1993년 다산현양문화제 미사 강론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마재를 두고 "성지 중의 성지"라 표현하면서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고, 1995년 무렵에는 당시 관할이던 서울대교구 제5지구가 뜻있는 신자에게서 부지를 기증받아 제대와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 공간을 조성하는 작업에 나섰다.  처음부터 지금 같은 한옥 성당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맨땅에 제대 하나를 놓는 것에서 성지 조성이 시작된 셈이다.

 

 

 

교구가 바뀌다

 

2004년 6월 24일, 교황청 교령에 따라 서울대교구 관할 가운데 경기 북부 8개 시·군이 분리되어 의정부교구가 새로 설정되었다.  남양주 전역이 이때 의정부교구로 편입되면서 마재 역시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바뀌었고, 이후 성지 조성 사업은 새로 출범한 의정부교구가 이어받아 계속했다.

 

 

 

한옥 성당과 명례방에 담긴 뜻

 

지금의 도마성당은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약 91제곱미터 규모의 작은 성당이다.  마당에 서 있는 예수상과 성모상은 한복을 입고 있다.  이 성당을 소개한 한 사제는 "우리나라는 선교사 없이 서학, 곧 책을 통해 실용적·신학적으로 접근하며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건축과 의복, 기도에 한국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설명한다.  아프리카에서 예수의 얼굴을 흑인의 모습으로 그리듯, 한복을 입은 성상 역시 신앙이 이 땅에 뿌리내린 방식을 보여주는 토착화의 한 사례로 꼽힌다.  성당 옆에는 '명례방'이라는 이름의 만남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데, 명례방은 본래 초기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서울에서 모여 미사를 봉헌하던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마재의 신앙 공동체가 서울의 초기 교회와 이어져 있었음을 되새기게 하는 이름이다.

 

 

 

성가정 성지로 선포되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정약종과 정철상을 복자품에 올린 일은 마재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5월 27일,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주례로 마재는 정식으로 '성가정 성지' 선포 및 축복식을 가졌다.  교구는 정약종 일가가 이룬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아 더 많은 가정이 신앙과 사랑을 배우는 요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고, 소비주의와 개인주의가 짙어지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이 작은 성가정의 이야기를 새롭게 되새기려는 뜻도 함께 담았다고 전해진다.

 

 

 

좁은 마당을 채우는 순례객들

 

성지는 지금도 규모가 크지 않다.  주차 공간은 승용차 15대에서 20대 남짓에 그치고, 버스로 오는 순례객은 마을 골목을 150미터가량 걸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도 주일 미사(오전 10시·낮 12시)와 평일 미사(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마다 서울·의정부·하남·성남·양평 등지에서 몰려든 순례객으로 마당까지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고 한다.  화려함 대신 소박함으로, 이 작은 마을은 여전히 많은 이의 발걸음을 불러들이고 있다.

 

 

 

가볼 수 있는 정보

 

  • 명칭: 마재 성가정 성지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698-44 (지번 주소: 능내리 116)
  • 미사 시간: 주일 오전 10시·낮 12시 / 평일(화~토) 오전 11시 —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어 방문 전 확인 권장
  • 문의: 031-576-5412 / majae@ujb.catholic.or.kr / www.majaesungji.or.kr
  • 주요 시설: 한옥 양식의 도마성당(약 91㎡), 명례방(만남의 방), 약종동산과 성가정 십자가의 길
  • 가는 길:자가용 이용이 편리하며, 인근에 정약용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옛 능내역(폐역 후 쉼터로 활용) 일대의 남한강 자전거길이 지나간다
  • 주차: 승용차 약 15~20대로 협소한 편이라 단체·버스 순례는 사전 문의를 권장
  • 연계 답사: 마재성지 → 토끼섬(왕복 약 30분) → 친환경 생태공원 → 정약용 유적지 → 실학박물관으로 이어 걷는 반나절 코스
  • 방문 예절: 신자들의 기도·미사 공간이므로 성당 내부 촬영이나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은 삼가는 편이 좋다

 

 

 

글을 마치며

 

마재는 화려한 유적이 아니다.  좁은 마당과 작은 한옥 성당,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한 가정의 이야기가 전부다.  그러나 선교사 없이 스스로 믿음을 받아들이고,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걸었던 자리라는 사실은 어떤 화려한 건축물보다 무거운 울림을 남긴다.  좁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0미터를 걸어 들어가는 그 짧은 길이, 어쩌면 이 성지가 순례객에게 건네는 첫 번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같은 능내리 안에서도 정약용 유적지(앞선 답사기)가 학문과 저술의 자취를 보여준다면, 마재성지는 그 형제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신앙의 자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곳은 서로 다른 결로 마재라는 한 마을의 역사를 완성한다.  다음 글에서는 마재성지에서 멀지 않은 곳, 두물머리 근처 물의정원과 다산생태공원을 걸으며 이 일대가 오늘의 남양주 시민에게 어떤 쉼터가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참고 자료

 

  • 가톨릭정보(maria.catholic.or.kr) — 의정부교구 마재 성가정 성지
  • 경인일보 — 독특한 "한옥 성당" 남양주 마재성지… "한국 천주교 뿌리"
  • 경인일보 — 한옥 성당과 한복 성상… "남양주 마재성지, 자생적 신앙 꽃피운 곳"
  • 경인일보 — 다산의 고향이자 한국 천주교 요람… 남양주 마재를 걷다
  • 가톨릭신문(catholictimes.org) — 의정부교구 마재성지, '성가정 성지'로 선포
  • 가톨릭신문(catholictimes.org) — 마재성지 개발열기 "후끈" (1995)
  • 위키백과 — 천주교 의정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