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B. 문화유적 탐방

동방 제일의 전망이라 불린 사연 - 운길산 수종사와 두물머리

pfinder903 2026. 9. 4. 21:48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2

동방 제일의 전망이라 불린 사연 - 운길산 수종사와 두물머리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다.”  조선의 한 임금이 한밤중에 들었다는 이 소리 하나가,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절의 이름을 만들었다.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8부 능선에 자리한 수종사(水鐘寺)는 이름부터 물(水)과 쇠북(鐘)을 함께 품고 있다.  왜 산속 절 이름에 ‘물’과 ‘종’이 나란히 붙었을까?  그 답은 세조가 겪었다는 하룻밤의 이야기 속에 있다.

다만 이 전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이야기인지는 뒤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절이 품고 있는 다른 이야기들 - 조선 왕실이 발원한 탑들, 다산 정약용이 사랑한 풍경, 그리고 지금도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그 전망 - 을 따라가 본다.

 

 

운길산 수종사와 두물머리

 

 

 

산 중턱, 굴속에서 울린 물방울 소리

 

1458년(세조 4년), 세조는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지금의 양수리 부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한밤중 어디선가 종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주변에 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세조가 신하들에게 조사를 시키자, 인근 바위굴 안에서 열여덟 나한상과 함께 물방울이 떨어지며 종소리처럼 울리는 소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세조는 이를 부처의 계시로 여겨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물소리가 종소리 같다’는 뜻으로 수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뒷글에서 따로 다룰 예정이니, 여기서는 이름의 유래로만 짚고 넘어간다.  절 자체는 이보다 오래전,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확한 창건 연대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세조가 심었다는 두 그루 은행나무

 

경내에는 지금도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세조가 절을 중창할 때 손수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들로, 수령이 500년을 훌쩍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이 절 마당을 가득 채우는데, 이 나무 아래 서면 세조의 전설이 그저 옛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실감이 든다.  다만 나무의 정확한 수령을 학술적으로 측정한 공식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며, ‘세조가 심었다’는 이야기 역시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 임을 밝혀둔다.

 

 

 

조선에 하나뿐인 팔각오층석탑

 

수종사에는 보물 제1808호로 지정된 팔각오층석탑이 있다(2013년 9월 4일 지정).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팔각 석탑의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도, 조선시대에 세워진 팔각오층석탑으로는 이 탑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의 기단부는 불상을 모시는 대좌 양식을, 몸돌은 목조 건축 양식을, 상륜부는 팔작지붕 형태를 각각 본떠 만들어졌다.

 

해체·수리 과정에서 탑 안에서 무려 31구의 불상과 함께 명문(글이 새겨진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이 명문 덕분에 탑이 늦어도 1493년에는 세워졌고 1628년에 한 차례 보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탑을 세운 이들도 예사롭지 않다.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가 발원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1493년에 불상을 봉안했으며, 훗날 인목대비까지 불상 조성에 뜻을 보탰다고 전해진다.  왕실 여성들의 발원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탑 하나에도 조선 왕실과 수종사의 깊은 인연이 담겨 있는 셈이다.

 

 

 

옥개석에 새겨진 이름, 정혜옹주 사리탑

 

팔각오층석탑과 함께 눈여겨볼 것이 보물 제2013호 사리탑이다(2019년 1월 25일 지정).  지붕돌(옥개석)에 새겨진 명문에는 “정통 4년 기미”라는 연도 표기와 함께 정혜옹주의 이름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1439년(세종 21년)에 세워졌다는 것과, 태종의 딸 정혜옹주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팔각원당형이라는 전통적인 부도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기단과 탑신에는 용과 구름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1939년 이 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청자와 금동제 유물 등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왕실의 딸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이 600년 가까이 산속에 남아, 조선 전기 석조 미술의 수준을 오늘까지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산이 ‘군자유삼락’에 비겼던 절

 

수종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마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나고 자란 정약용에게 수종사는 지척에 있는 산책지이자 사색의 공간이었다.  그는 「유수종사기(游水鍾寺記)」라는 글을 남겨 수종사에 오른 감회를 기록했으며, 그가 평생 수종사에서 느낀 즐거움을 맹자가 말한 ‘군자유삼락(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에 견줄 만하다고 여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약용이 유배에서 돌아온 뒤에도 이곳을 즐겨 찾았다는 사실은, 그가 왜 다신전과 같은 차 관련 저술까지 남기게 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초의선사와 나눈 차 한 잔, 삼정헌의 뿌리

 

정약용과 가깝게 지냈던 초의선사 역시 수종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조선 후기 차 문화를 대표하는 승려로 꼽히는 초의선사가 이곳에서 한강의 풍광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수종사에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감로수로 우린 차를 무료로 대접한다.  조선의 학자와 승려가 나누었던 차 한 잔의 정취를, 수백 년이 지난 오늘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셈이다.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은 풍경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 일대의 풍경은 조선시대 화가들에게도 특별한 소재였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은 「경교명승첩」이라는 화첩에 이 일대의 풍경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으로까지 남을 만큼 이 전망이 당대에도 손꼽히는 절경이었다는 뜻이다.

 

 

 

전쟁이 앗아간 옛 건물, 다시 세운 오늘의 모습

 

수종사는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쳤다.  조선 후기와 근대의 기록이 이어지다가, 6·25전쟁을 거치며 옛 건물 상당수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금 경내에서 만나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전각들은 이후 현대에 들어 다시 세운 것들이다.  반면 팔각오층석탑과 사리탑처럼 석조로 남아 있던 문화유산은 전쟁의 화마 속에서도 비교적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두물머리를 끌어안은 명승이 되다

 

수종사와 그 주변의 경관은 2014년 3월 12일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명승 제109호에 지정되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저명한 조망지점이라는 점이 지정 사유였다.  봄에는 신록,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어우러지고, 새벽 안개가 강 위로 깔리는 운해와 일출·일몰까지 사시사철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 절을 ‘동방 제일의 전망’이라 부르게 만든 이유로 꼽힌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433번길 186 (송촌리)
  • 문의:  031-576-8411
  • 관람시간: 특별한 마감 시간 없이 상시 개방된다는 안내와, 오전 7시~오후 6시(겨울철은 오전 11시~오후 4시 방문 권장)라는 안내가 함께 있어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방문 전 사찰이나 남양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확인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 입장료·주차료: 무료
  • 가는 법: 자가용은 일주문 앞 주차장에 세운 뒤 사찰까지 약 400m, 도보 10~15분 거리입니다. 대중교통은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내려 등산로를 따라 약 1시간 정도 걸어 오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겨울철 결빙 시에는 차량 진입로가 통제될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둘러볼 곳: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 사리탑(보물 제2013호), 세조가 심었다는 500년 은행나무 두 그루, 삼정헌(무료로 차를 대접받을 수 있는 다실), 대웅보전·약사전·응진전·산신각 등의 전각, 그리고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글을 마치며

 

이름 하나에 담긴 전설에서 시작해, 조선 왕실이 발원한 두 개의 탑,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나눈 차 한 잔, 겸재 정선의 화폭까지 - 운길산 수종사는 작은 산사 하나에 여러 겹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는 한결같이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정약용의 고향과 가까운 마재성지를 직접 걸어보는 순례기로 이어간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 짧게만 짚고 넘어간 세조의 종소리 전설은, 사실과 이야기를 좀 더 촘촘히 가려보는 별도의 글로 다시 다룰 예정이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포털 — 명승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 국가유산포털 — 보물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 위키백과 — 수종사

• 위키백과 —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 위키백과 —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 나무위키 — 수종사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보물 지정

• 헤럴드경제 — 두물머리가 발 아래 펼쳐진다, ‘풍경 명소’ 남양주 수종사

• 웰로(welfarehello) — 북한강 뷰와 고즈넉한 사찰을 만날 수 있는 남양주 수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