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19
기차가 지나간 자리, 마을이 달라졌다 — 경춘선과 함께 변한 남양주
남양주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경춘선 철길에는 별내, 퇴계원, 사릉, 금곡, 평내호평, 천마산, 마석까지 일곱 개의 역이 있다. 지금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평범한 전철 노선이지만, 이 철길이 놓인 지 이제 90년 가까이 되었다. 그 사이 남양주의 여러 마을은 이 철길을 따라 생기고, 자라고, 때로는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기차가 지나가야 도청을 지킨다?
경춘선의 탄생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 지역 유지 12명이 1936년 직접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세워 철도를 놓았다는 것이다. 조선인의 손으로 세운 '민족 자본 철도'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여러 매체에서 되풀이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주식 구성을 살펴본 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인 출자 비율은 17.5%에 그쳤고, 나머지 대부분은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본 법인의 자본이었다. 부설 자금의 상당 부분도 조선식산은행 차입금으로 충당되었으며, 초대 사장 역시 총독부와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 시각에서 보면 경춘선은 민족 자본의 상징이라기보다, 화천·청평 등지의 댐 건설 자재와 산업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한 일제강점기 자원 수송로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경춘선이 처음부터 순수하게 지역민만을 위한 철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939년, 성동에서 춘천까지
우여곡절 끝에 1939년 7월, 서울 성동역에서 춘천까지를 잇는 경춘선이 개통되었다. 이 노선은 지금의 남양주시 구간도 처음부터 관통했다. 당시에도, 지금도 남양주를 지나는 역은 별내·퇴계원·사릉·금곡·평내호평·천마산·마석 등으로 큰 틀에서 이어지고 있다. 개통 초기부터 수익성이 좋아 부설 자금을 비교적 이른 시일에 회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역 이름에 새겨진 역사
남양주 구간의 역 이름을 하나씩 짚어보면 이 지역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릉역'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가 잠든 사릉에서, '금곡역'은 인근에 고종·순종 내외가 잠든 홍유릉이 있는 금곡동에서 이름을 따왔다. 앞서 다룬 조선왕릉 이야기들이 실은 지금도 매일 전철을 타고 지나치는 역 이름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국유화와 간선철도 편입
1945년 광복을 맞은 이듬해인 1946년 5월 17일, 경춘철도주식회사는 국유화되어 국가가 운영하는 간선철도로 편입되었다. 개인 회사가 놓은 철길이 이때부터 온전히 나라의 철도망 일부가 된 것이다.
청춘을 실어나른 완행열차
1970년대 이후 경춘선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서울 근교에서 가장 만만하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로 각광받으며 '청춘열차'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다.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를 타고 대성리·강촌 등지로 대학생들이 엠티를 떠났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았다. 열차 안에서 간식을 파는 모습도 이 무렵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남양주 구간의 역들 역시 그 여정의 출발점이자 경유지로, 통학과 통근은 물론 이런 낭만적인 이미지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 가졌다.
역이 마을을 만들고, 마을이 역을 키우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지역의 산업 지형도 바꾸어 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마석역 일대에 형성된 가구공단이다. 서울에서 가깝고 철도로 물류를 옮기기 좋은 입지 조건은 이 일대에 가구 제조업체들이 모여드는 배경이 되었고, 이후 마석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가구산업 밀집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산업이 커지면서 이 지역은 국내외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공단 마을로 자리 잡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도 여러 이야기를 남기게 되었다.
평내호평역 주변도 비슷한 흐름을 탔다. 원래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이 일대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상업 시설과 주거 단지가 들어서며 남양주 동부의 중심 생활권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역이 있었기에 사람과 물자가 모였고, 사람과 물자가 모이면서 다시 역 주변이 번성하는 순환이 여러 역에서 반복된 셈이다.
옛 역은 사라지고, 새 역이 들어서다
2010년 12월 21일, 경춘선은 오랜 완행열차 시대를 뒤로하고 복선 전철로 새롭게 개통되었다. 수도권 전철망에 편입되면서 배차 간격이 짧아지고 이용객도 크게 늘었지만, 그 대가로 정겨웠던 옛 역사들은 대부분 자리를 떠났다. 남양주 구간에서는 사릉역과 평내호평역의 옛 역사가 철거되고 새 역사가 들어섰으며, 그밖에 여러 옛 역이 헐렸다. 1939년 개통 당시 지어진 옛 금곡역만이 유일하게 건물이 남아, 지금은 지역 교회의 예배당과 북 카페로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홍유릉으로 소풍 가는 학생과 관광객들로 붐비던 이 작은 역사가,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맞고 있는 셈이다.
지금, 경춘선과 함께 사는 남양주
오늘날 경춘선은 준고속열차 ITX-청춘과 일반 전철이 함께 다니는 수도권 광역철도의 한 축이 되었다. 별내역처럼 다른 노선과 만나는 환승역이 새로 생기고, 역 주변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섰다. 대성리로 떠나던 엠티의 낭만은 옅어졌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매일 아침저녁 이 철길을 따라 서울과 남양주를 오가는 사람들의 훨씬 촘촘해진 생활권이다. 완행열차가 한 시간 넘게 걸리던 거리를, 이제는 급행 전철과 준고속열차가 훨씬 짧은 시간에 잇고 있다.
가볼 수 있는 정보
옛 금곡역은 현재 종교시설로 사용 중인 사유 건물이므로, 외부에서 살펴보는 정도로 예의를 갖추어 답사하는 것이 좋다.
- 옛 금곡역: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일대 — 현재 교회 건물로 사용 중(2013년부터)
- 경춘선 남양주 구간 역: 별내·퇴계원·사릉·금곡·평내호평·천마산·마석역
- 교통: 경춘선 전철(ITX-청춘 일부 역 선택정차)로 서울 청량리·상봉 방면과 연결
- 연계 답사: 사릉역 인근 사릉(16번째 글), 금곡역 인근 홍유릉(15번째 글) 등과 함께 묶어 돌아보기 좋음
글을 마치며
경춘선은 처음 놓일 때부터 논쟁적인 철도였고, 청춘의 낭만을 실어 나르던 시절도 있었으며, 지금은 수도권 생활권을 촘촘히 잇는 광역철도가 되었다. 그 사이 남양주의 마을들은 이 철길을 따라 산업 단지가 되기도 하고, 아파트 숲이 되기도 했다. 옛 금곡역 건물 하나가 그 90년에 가까운 변화를, 지금도 조용히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일제강점기 남양주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들여다본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 경춘선 (역사·개통·복선전철화 교차 확인)
- 나무위키 — 경춘선/역 목록
- 경기일보 — [지키자! 미래유산] ⑪남양주 '옛 금곡역', 경춘선 남양주 구간 유일하게 남은 폐역
- 오마이뉴스 — 조선인 자본으로 세운 첫 철도... 경춘선만의 특별함
- 민들레(시민언론) — 강점기 경춘선이 민족산업을 육성했다는 헛소리 (반박 시각)
- 비즈한국 — '춘천 가는 기차'와 함께 추억 여행, 화랑대 철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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