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C.근현대사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pfinder903 2026. 9. 7. 18:17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1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남양주에서 가장 높은 산, 천마산(天摩山)에 한때 스키 리프트가 다섯 기나 걸려 있었다고 하면 믿어질까.  지금은 등산객들이 능선을 따라 조용히 오르내리는 이 산 남쪽 기슭에는 1980년대 초부터 2020년대 초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스키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이곳은 왜, 그리고 어떻게 문을 닫게 되었을까.  신령한 산으로 여겨지던 천마산이 한때 위락지로 개발되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산에 새겨진 남양주의 근현대 개발사를 따라가 본다.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

 

천마산이라는 이름에는 고려 말 이성계가 이 산을 지나며 "산이 매우 높아 손을 석 자만 뻗어도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 높이는 810m 안팎(자료에 따라 810.3~812m)으로 남양주 관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어느 방향에서 올라도 정상이 올려다보이는 독특한 산세를 가졌다.  한편으로는 산세가 험하고 봉우리들이 고르지 못해 예로부터 '소박맞은 산'이라는 다소 애틋한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이 지명 유래를 비롯해 천마산에 얽힌 여러 전설과 이야기는 뒤에 다룰 '지명 유래' 편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이 산이 근현대 들어 어떻게 개발되고 또 어떻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는지에 집중한다.

 

남양주문화원에 따르면 예로부터 이 산을 신령한 산으로 여겨 산신제를 지내 온 전통이 전해지는데, 산이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이후 이 산이 국립공원급 보호구역이자 동시에 위락시설의 무대가 되는 이중적 운명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눈밭이 되다

 

천마산 남쪽 기슭에 스키장이 들어선 것은 1982년 12월의 일이다.  개장 당시 이름은 '천마산스키장'. 운영사는 선진종합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외동딸 정경희의 남편인 정희영이 대주주(지분 46%)로 있는 범현대가 계열의 가족회사였다.  스키장뿐 아니라 객실 38개에 350~3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 '스타힐리조텔'과 단체 연수원까지 함께 갖춘 종합 레저타운으로 조성되어,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접근성 덕분에 개장 초기부터 수도권 스키어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겨울 나들이 장소로 자리 잡았다.

 

 

 

개발과 보호가 나란히 시작된 산

 

흥미롭게도 스키장이 문을 연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1983년 8월 29일, 천마산 일대는 자연생태계와 풍경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군립공원(당시 남양주군)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면적은 12.714㎢에 이른다. 산자락 한편에서는 위락시설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산 전체를 보호구역으로 묶는 상반된 움직임이 같은 시기에 함께 진행된 셈이다.  이 같은 개발과 보전의 공존은 이후 천마산의 운명을 오래도록 관통하는 흐름이 된다.

 

한편 2019년 봄에는 천마산 일대에 산불이 발생해 산림 일부가 피해를 입기도 했는데, 이후 복구 과정을 거쳐 지금의 울창한 숲으로 회복되었다.

 

 

 

 

슬로프 6면, 리프트 5기 — 서울 근교 최고의 겨울 놀이터

 

전성기의 천마산스키장은 슬로프 6면(최장 슬로프 1.2km), 리프트 5기(정상부 해발 약 370m)를 갖춘 중형 스키장이었다.  1975년 국내 첫 스키장인 용평리조트가 문을 연 이래 1980년대는 전국 곳곳에 스키장이 속속 들어서던 시기였고, 천마산스키장 역시 경기도 내 스키장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자리 잡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 자료에 따르면 1975년 이후 국내에 개장한 스키장은 모두 19곳에 이르렀는데, 겨울철이면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갈 수 있는 스키장을 찾던 이들에게 천마산은 오랫동안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름은 세련되게, 그러나 적자는 그대로

 

2000년대 중반, 천마산스키장은 '스타힐리조트'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어도 경영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스키 인구가 꾸준히 줄어드는 가운데 대형 스키장들과의 경쟁이 격화되었고, 기후변화로 겨울철 영업 가능 일수가 짧아지면서 제설 등 운영비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스타힐리조트는 몇 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1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고 한다.

 

 

 

전국 스키장 흥망사 속의 천마산

 

천마산스키장(스타힐리조트)만의 사정은 아니었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 집계에 따르면 1975년 이후 개장한 국내 스키장 19곳 가운데 이미 6곳이 문을 닫거나 휴장했고, 그 무렵에도 2~3곳이 추가로 경영난에 시달리며 축소·폐업을 검토하고 있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스키 인구 자체의 감소, 짧아지는 겨울과 잦은 이상고온, 그리고 소수의 대형 리조트로 수요가 쏠리는 흐름까지 겹치면서 중소형 스키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던 전국적 추세 속에, 천마산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코로나19가 마지막 방점을 찍다

 

2019~2020시즌의 악천후에 이어 2020~2021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제한과 내장객 급감이 겹쳤다.  결국 스타힐리조트는 2021년 6월 30일부로 완전히 문을 닫았다.  40년 가까이 이어온 스키장의 폐업이었다.  공교롭게도 폐업 이후 모회사 선진종합의 영업이익률은 3.2%에서 15.8%로 크게 뛰어올랐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스키장 사업이 회사 전체에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산 아래엔 이름만 남았다 — 천마산역

 

2013년 11월 30일, 경춘선 복선전철화와 함께 화도읍 묵현리에 '천마산역'이 새로 문을 열었다.  산 이름을 딴 이 역은 개통 당시만 해도 서쪽 천마산 자락의 스타힐리조트와 가까운 역으로 소개되곤 했다.  그러나 2021년 리조트가 폐업하면서, 지금은 산의 이름만 물려받은 채 등산객들이 오가는 조용한 간이역으로 남아 있다.

 

 

 

40년 만에 이름을 되찾다

 

1995년 남양주군이 남양주시로 승격된 뒤에도 천마산은 40년 가까이 '군립공원'이라는 옛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었다.  시로 승격된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원을 '시립공원'으로 부를 법적 근거는 2016년 자연공원법 개정으로 뒤늦게 마련되었고, 남양주시는 이를 근거로 2023년 8월 8일 심의를 거쳐 같은 달 10일 '천마산 시립공원'으로의 명칭 변경을 공식 발표했다.  마침 천마산은 산림청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였던 만큼, 시 대표 명산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정비하는 계기로 평가되었다.

 

 

 

가볼 수 있는 정보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오남읍 일원 (천마산 시립공원)
  • 교통: 경춘선 천마산역·마석역·평내호평역에서 각 등산로 입구로 진입 가능
  • 등산 코스: 호평동 코스(평내호평역 기점, 가장 대중적인 코스), 관리소 코스(마석역 기점, 전통적인 능선 코스), 천마산역 코스(최단 코스), 팔현리 코스(오남읍 기점, 야생화와 계곡을 함께 즐기는 코스) 등 4개 코스가 있다.
  • 옛 스타힐리조트 부지: 2021년 폐업 이후 사유지로 남아 있어 임의 출입은 어려우며, 향후 활용 계획은 아직 공식화된 바 없다.
  • 정확한 관람·이용 시간, 통제 구간 등은 남양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또는 천마산 관리사무소를 통해 사전에 확인하는 것을 권장한다.

 

 

 

글을 마치며

 

천마산은 신령한 산으로 여겨지던 자리에 1980년대 위락 개발의 물결이 밀려들었다가, 스키 산업의 전국적 쇠퇴와 기후변화, 코로나19라는 여러 겹의 파도 앞에서 다시 등산과 자연 중심의 산으로 돌아온 흥미로운 사례다.  같은 시기 군립공원 지정과 스키장 개장이 나란히 이루어졌던 것처럼, 개발과 보전은 이 산 위에서 오랫동안 함께 존재해 왔다.  다음 글에서는 정약용의 고향이자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 블로그에 등장한 마재마을이, 근현대 들어 어떻게 오늘의 모습으로 변해 왔는지를 따라가 본다.  개발의 결과물이 늘 영구히 남는 것은 아니며, 자연은 자리를 되찾을 기회를 얻기도 한다는 점에서 천마산의 40년은 남양주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 천마산(남양주)
  • 위키백과 — 천마산 (남양주)
  • 나무위키 — 스타힐리조트
  • 경인일보 — 경기도내 주요 스키장 소개
  • 비즈워치 — [거버넌스워치] 현대 '왕회장' 사위의 선진종합, 리조트 문 닫자
  • 다음뉴스 — 짧아지는 겨울, 귀해지는 눈…문 닫는 스키장들
  • e-환경과조경 뉴스 — 남양주 천마산 군립공원, '천마산 시립공원'으로 명칭 변경
  • 산림청 100대 명산 목록 (100mountain.co.kr)
  • 나무위키 — 천마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