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D. 전설·지명유래

제사를 지내야 잡히던 멧돼지 — 축령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pfinder903 2026. 9. 8. 22:10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6

제사를 지내야 잡히던 멧돼지 — 축령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에 우뚝 솟은 산이 하나 있다.  해발 879미터, 울창한 잣나무 숲으로 유명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린 축령산이다.  그런데 이 산 앞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지는 게 있다. '축령(祝靈)'이라는 두 글자, 풀어보면 '빌 축(祝)'에 '신령 령(靈)' - 그러니까 '신령에게 빈 산'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떤 절박함으로 이 산에서 빌었기에 그 행위 자체가 산의 이름이 되었을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축령산에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두 가지 전해지는데, 등장인물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조선을 세운 임금 이성계, 다른 하나는 그 조선에서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장군 남이다.  시대도 다르고 신분도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같은 산 이름의 주인을 자처하게 되었을까.  지난 편에서 수종사의 종소리 전설을 다루며 '창건'과 '중창'이 뒤섞인 이야기를 풀어봤다면, 이번에는 아예 서로 다른 두 주인공이 경쟁하는 지명 유래를 따라가 본다.

 

 

 

제사를 지내야 잡히던 멧돼지 — 축령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사냥에 나섰다가 아무것도 잡지 못한 임금

 

축령산 이름의 유래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얽힌 사냥 전설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조선을 세우기 전이었는지 세운 뒤였는지는 전승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지만, 이성계가 이 산에서 사냥을 나섰다가 하루 종일 짐승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몰이꾼들과 함께 산을 몇 바퀴나 돌았는데도 허탕이었다.  답답해진 그때, 함께 있던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니 먼저 산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사냥이 될 것"이라고 진언했다고 전해진다.

 

 

 

산신에게 빌고 나서야 얻은 것

 

이성계는 그 말을 따라 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올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곧바로 멧돼지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전설의 결말이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사람들은 이 산을 '고사(제사)를 지낸 신령한 산'이라는 뜻에서 축령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 이야기가 실록이나 지리지 같은 공식 기록에 명확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을 세운 인물과 연결 지어 산의 신성함을 설명하려는, 오래도록 구전되어 온 지명 유래담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런데 이 산의 주인공은 또 있다

 

축령산 자락에는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인물과 얽힌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조선 세조·예종 대의 무관 남이(1443~1468)다.  이성계 전설이 '왕이 산신에게 빈 산'이라는 이야기라면, 남이 전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려 이름 붙인 산'이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스물여섯 살에 병조판서에 오른 남자

 

남이는 세조의 신임을 받아 1467년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뒤이어 압록강 너머 건주위 여진족을 정벌하는 전투에서도 앞장서 활약했다.  이런 무공을 바탕으로 스물여섯이라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든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 오늘날로 치면 국방부 장관 격의 자리에 올랐다.  세조가 총애하던 젊은 무장으로서 순탄하게만 보이던 그의 앞길은, 정작 세조가 세상을 떠나고 예종이 즉위하면서 완전히 뒤바뀐다.

 

 

 

혜성 하나가 부른 죽음

 

남이가 궁궐에서 숙직을 서던 중 밤하늘에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들어설 징조"라는 말을 했는데, 평소 그를 시기하던 유자광이 이 말을 왕을 몰아내고 새 임금을 세우겠다는 뜻이라며 역모로 왜곡해 고변했다.  세조 때부터 공신으로 자리 잡고 있던 한명회·신숙주 등도 그를 구명하지 않았고, 결국 남이는 1468년 10월 27일, 스물여섯의 나이로 처형당했다.

 

 

 

이름을 남긴 건 슬픔이었을까

 

이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유자광의 거짓 고변으로 남이가 억울하게 죽자 그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 산에 '축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실제로 축령산 자락에는 남이가 어린 시절 무예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남이바위'가 남아 있고, 정상에 오르면 멀리 가평의 남이섬까지 조망된다는 점이 이 전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야기된다.

 

 

 

정작 무덤은 이 산에 없다

 

다만 사실관계를 조금만 더 따라가 보면 이 전설에도 빈틈이 있다.  남이의 실제 무덤은 축령산도, 그가 어렸을 때 무예를 닦았다는 이 일대도 아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  흔히 '남이섬의 남이 장군 묘'로 알려진 곳 역시 1965년에 새로 조성된 허묘일 뿐, 실제 유해가 묻힌 자리는 아니다.  즉 남이라는 인물과 이 일대의 인연은 무덤이라는 물증이 아니라 지명과 바위 이름,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셈이다.  두 전설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생겼는지, 혹은 두 이야기가 어떻게 한 산 이름 아래 공존하게 됐는지를 밝혀주는 명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원혼을 달래는 사당, 남양주가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

 

남이의 원혼을 위로하려는 마음은 사실 축령산 자락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는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올리는 남이장군사당이 있다.  남이가 용산 일대에서 병사를 모으고 훈련시켰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처형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그를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서울특별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남이장군사당제는 약 3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젊은 나이에 기개를 펴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군의 생을 안타깝게 여겨 그의 원혼을 달래고 충절을 기리려는 뜻에서 지금도 해마다 대제를 지낸다.  축령산의 지명 유래담이 하필 '위령'이라는 낯선 개념을 들고 나온 것도, 이렇듯 남이를 향한 위령의 전통이 이미 여러 지역에 뿌리내려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높이조차 자료마다 다르게 적힌 산

 

흥미롭게도 축령산은 정확한 높이조차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된다.  위키백과와 여러 관광 안내 자료는 해발 879미터로 소개하지만,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나 산림청의 100대 명산 목록에서는 886~887미터로 기록하고 있다.  몇 미터 차이로 산의 정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산을 두고도 기관과 자료마다 숫자가 엇갈린다는 사실은 축령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두고 두 가지 전설이 나란히 전해지는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다.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그리고 여러 번 옮겨 적힐수록 숫자 하나, 이름 한 글자도 조금씩 흔들리기 마련이다.

 

 

 

잣나무는 어떻게 이 산을 뒤덮었나

 

전설과 별개로, 축령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울창한 잣나무 숲이다.  이 숲은 전설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그리고 비교적 분명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33~34년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약 5만 그루의 잣나무가 90여 년 가까이 자라 지금은 약 18헥타르에 이르는 숲을 이루고 있다.  수령 80년이 넘는 잣나무림이 국내 최대 규모로 남아 있는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이 숲의 치유 효과에 주목한 산림청은 이곳에 '잣향기 푸른교실'이라는 숲체험 프로그램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름은 하나, 이야기는 둘

 

결국 축령산이라는 이름 안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시간이 겹쳐 있다.  왕조를 세운 임금이 산신에게 빌었다는 개국 초의 이야기, 그리고 그 왕조 안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오른 만큼 가장 허무하게 스러진 장군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 '진짜' 유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산은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임금의 권위를 빌려 산의 신성함을 설명하고 싶었던 사람들과, 억울하게 죽은 젊은 장수를 그냥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같은 산자락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지어낸 셈이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 해발 879미터(자료에 따라 886~887미터로도 표기)
  • 축령산자연휴양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축령산로 299 (1995년 조성)
  • 이용시간: 4~10월 06:00~19:00(입장 마감 18:00), 11~3월 07:00~17:00(입장 마감 16:00)
  • 입장료: 어른 1,000원 · 청소년·군인 600원 · 어린이 300원 (남양주시민은 신분증 지참 시 무료)
  • 등산코스: 축령산 코스, 서리산 코스, 두 산을 잇는 일주 코스(약 3시간 30분), 초보자도 걷기 좋은 '산내음 둘레길'(1.14km)
  • 동쪽 기슭에는 아침고요수목원이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고, 봄철에는 이웃한 서리산 정상의 철쭉 군락지가 절정을 이룬다.

 

 

 

글을 마치며

 

같은 산 하나를 두고 임금의 기도와 장군의 원혼이라는, 결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이름 유래가 나란히 전해진다는 사실은 지명 전설이 얼마나 여러 겹으로 쌓여 만들어지는 이야기인지를 잘 보여준다.  확실한 것은 '축령'이라는 이름이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 혹은 억울한 죽음을 기리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고, 불확실한 것은 그 마음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였는가 하는 점이다.  어느 쪽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오르든, 축령산의 잣나무 숲길은 그 자체로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음 편에서는 같은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뜻을 품은 천마산의 지명 유래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 축령산 (경기)
  • 나무위키 — 축령산(경기)
  •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 — 축령산자연휴양림
  • 위키백과 — 대한민국 100대 명산 목록
  • 위키백과 — 남이
  • 나무위키 — 남이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 남이장군묘
  • 위키백과 — 남이 장군 사당제
  • 경향신문 — [길숲섬] 치유의 숲, 잣향기 푸른교실 '가평 축령산 잣나무숲'
  • 웰로 — 힐링하기 좋은 축령산자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