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4
나루터가 사라진 자리, 스튜디오도 문을 닫았다-조안면 근대화 이야기, 두물머리 주변의 변화
남양주에서 두물머리 쪽으로 차를 몰다 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건 대부분 카페와 펜션인데, 그 사이사이로 유기농 채소를 파는 작은 매대와 다 쓰러져가는 옛 영화 세트장 표지판이 불쑥 등장한다는 것이다. 강가 마을에 왜 유기농업이 자리를 잡았을까. 그리고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는 영화 스튜디오는 왜, 그리고 어떻게 문을 닫았을까. 답은 같은 곳에서 나온다. 바로 반세기 넘게 이 땅을 묶어 온 규제다. 이번 글에서는 조안면이라는 하나의 행정구역이 나루터 마을에서 규제 지역으로, 다시 유기농업과 영화산업의 땅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관광지이자 개명 논쟁의 무대로 바뀌어 온 근현대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여섯 나루터 마을이 하나의 면으로 묶이다
지금의 조안면은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광주부 초부면에 속한 여러 개의 작은 나루터 마을이었다. 1906년 양주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와부면'의 일부로 통합되었다가, 1940년 조안출장소를 거쳐 1986년 4월 1일에야 비로소 독립된 '조안면'으로 승격했다. 지금의 조안면은 조안리·능내리·삼봉리·진중리·송촌리·시우리 등 6개 법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50.70㎢, 인구는 2025년 10월 기준 3,737명 정도로 남양주시 전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면 단위 지역에 속한다. 마재마을(능내리)의 행정구역 변천은 이미 앞선 글에서 다루었지만, 이번 글은 그 능내리를 포함한 조안면 전체를 하나의 경제·생활권으로 놓고 들여다본다.
강물이 마을 앞자락까지 차올랐다
조안면의 운명을 바꾼 첫 번째 사건은 팔당댐이다. 1966년 착공해 1974년 준공된 이 댐은 능내리를 비롯한 조안면 일대 나루터들의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마재나루로 대표되던 뱃길 교통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거대한 팔당호가 들어섰다. 이 이야기는 마재마을 편에서 이미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되, 중요한 것은 이 담수가 조안면 전체를 '상수원 인근 지역'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묶어버렸다는 사실이다.
1975년 반세기 규제가 시작되다
팔당댐이 준공된 이듬해부터 시작된 규제는 이후 조안면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축이 된다. 1975년, 조안면 일대는 서울과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상수원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동시에 지정되었다. 여기에 1990년에는 상수원 수질 오염 우려가 커지면서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까지 추가로 지정되었는데, 이 내용 역시 마재마을 편에서 다룬 바 있다. 세 겹의 규제가 동시에 걸리면서 조안면 주민들은 음식점 신축이나 공장 설립은 물론, 집을 고치는 것조차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규제 속에서 자라난 역설의 산업, 유기농업
그런데 바로 이 규제가 조안면에 뜻밖의 산업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환경에서, 지역 농가들은 20년 넘게 유기농업으로 눈을 돌렸다. 2008년 무렵 남양주시가 세계유기농대회 유치에 나설 정도로 조안면 일대의 유기농업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자리 잡아 있었으며, 당시 조안면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채소가 수도권 야채 소비량의 약 30%를 공급한다는 통계까지 나올 정도였다. 개발을 막았던 규제가 역설적으로 친환경 농업이라는 새로운 지역 브랜드를 키워낸 셈이다.
논밭 사이에 아시아 최대 영화 스튜디오가 서다
규제로 묶인 조용한 농촌 지역에 전혀 다른 성격의 시설이 들어선 것은 1997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5일, 조안면 삼봉리에 남양주종합촬영소가 문을 열었다. 약 650억 원을 투입해 6년에 걸쳐 조성한 이 시설은 개관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영상지원센터로 소개되었다. 이후 20여 년간 〈쉬리〉, 〈여고괴담〉, 〈공동경비구역 JSA〉, 〈취화선〉, 〈광해, 왕이 된 남자〉, 〈극한직업〉 등 한국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상수원보호구역 한복판, 유기농 농지 사이에 대규모 세트장과 스튜디오가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 지역의 독특한 이력을 보여준다.
20년 만에 불이 꺼지다
번성하던 촬영소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2013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촬영소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2016년에는 부동산 개발업체 부영에 매각되었다. 2018년에는 일반 관람객을 위한 체험시설 운영이 종료되었고, 2019년 10월 16일 공식적으로 완전히 문을 닫았다. 이후에도 2020년 10월 영화 〈자산어보〉가 이곳에서 마지막 촬영을 진행했고, 같은 해 12월 소유권 이전 절차가 마무리되며 20여 년의 역사가 일단락되었다.
규제가 다시 한 번 이 땅을 붙잡다
촬영소를 인수한 부영은 애초 이 부지에 아파트 등 주거시설 개발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안면 전체를 묶고 있는 상수원보호구역·개발제한구역 규제가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결국 대규모 주거 개발은 성사되지 못했고, 부지는 영화 촬영시설의 형태로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규제가 이번에는 무분별한 개발을 막아낸 역설적 사례로 남은 셈이다.
두물머리, 나루터에서 사진 명소로
같은 시기 조안면의 또 다른 얼굴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 속하는 두물머리이지만, 북한강 건너 조안면의 물의정원·삼봉리와 사실상 하나의 관광권을 이루며 함께 성장해 왔다. 400년 묵은 느티나무와 물안개, 일출 풍경으로 유명해진 두물머리는 옛 나루터에서 전국적인 사진 명소로 변모했고, 그 인기에 힘입어 강 건너 삼봉리 일대에도 자연스럽게 카페 거리가 형성되었다. 물의정원의 조성 배경은 앞선 글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번 글에서는 이 관광 붐이 조안면의 경제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초점을 둔다.
50년 규제, 조금씩 풀리다·그리고 이름조차 바뀌려 한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규제에 대한 주민들의 누적된 불만은 최근 몇 년 사이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남양주시와 주민들은 관련 규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2025년 11월 27일 청구기간 만료로 각하되었고 주민들은 재청구와 입법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한편 2024년 12월에는 조안면 내 129개 필지, 약 6만 2,300㎡가 환경정비구역으로 추가 지정되면서 농가주택 증축이나 음식점 용도 변경 등 일부 규제가 완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주광덕 남양주시장이 조안면의 이름을 아예 '정약용면'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실존 인물의 실명이 온전히 들어간 법정 지명은 국내에서 시도된 적이 없어, 이 개명 논의는 주민 의견 수렴과 시의회 절차를 거치며 계속 진행 중이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두물머리는 경춘선 운길산역에서 도보나 버스로 접근할 수 있으며,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조안면 물의정원·삼봉리와 마주 보고 있어 함께 묶어 답사하기 좋다. 삼봉리 일대에는 두물머리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카페와 식당이 밀집해 있다. 옛 남양주종합촬영소 부지는 현재 일반에 상시 개방되는 관람시설은 아니므로, 방문을 원한다면 사전에 운영 현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조안면 일대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야영이나 취사, 낚시 등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현장의 안내판을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글을 마치며
조안면은 팔당댐이 들어선 이후 반세기 넘게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름 아래 개발이 묶여 온 땅이다. 그런데 바로 그 규제가 유기농업이라는 산업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 대신 영화 촬영시설이 남는 결과를 낳았다. 나루터가 사라진 자리에는 관광객이 몰리는 두물머리가, 스튜디오가 문을 닫은 자리에는 규제 완화와 개명 논의가 새롭게 들어서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순서상 비어 있던 자리 중 하나인 운길산 수종사 답사기, 혹은 남양주 지명 유래를 다루는 D 카테고리의 다른 이야기로 이어가 볼 예정이다.
참고 자료
- SBS 뉴스 — [수도권] 남양주, 세계유기농대회 유치 총력전
- SBS 뉴스 — '정약용면' 추진…지명 관행 깬다
- 문화일보 — 다산 선생 고향 남양주 조안면… '정약용면' 새 이름 단다
- Cine21 — 20년 역사 뒤로하고 10월에 문 닫는 남양주종합촬영소에 가다
- 아시아경제 — 남양주종합촬영소, 다시 영화인들 일터로...
- 아시아경제 — 남양주시 조안면 환경정비구역 추가 지정…주민의견 수렴
- 포커스경제 — 남양주시 조안면 주민들 "50년 규제 외면한 각하"… 헌법소원 재청구와 입법 대응 본격화
- 나무위키 — 조안면
- 위키백과 —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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