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D. 전설·지명유래

이름이 곧 울음소리였던 새 — 광릉숲 크낙새 이야기

pfinder903 2026. 9. 11. 09:17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9

이름이 곧 울음소리였던 새 — 광릉숲 크낙새 이야기

 

 

남양주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빨간 머리에 검은 몸을 한 새 캐릭터 둘이 방문객을 맞습니다.  이름은 '크크'와 '낙낙이'. 남양주시를 상징하는 새인 크낙새를 본떠 만든 캐릭터입니다.  시내 곳곳의 안내판과 홍보물에서도 이 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새를 실제로 본 사람은, 남한에 거의 없습니다.  크낙새가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것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  그마저도 자료마다 연도가 엇갈립니다.  30년이 훌쩍 넘도록 아무도 보지 못했고, 이제는 남한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상징으로만 남고 실물은 사라진 셈입니다.

 

이름부터 낯섭니다. '크낙'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요?  한자로 옮기면 무엇이 될까요?  답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 이름에는 뜻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뜻이 아니라 소리입니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다뤄 온 지명들이 사람이 붙인 이름이었다면, 크낙새는 새가 스스로 알려준 이름입니다.

 

 

 

이름이 곧 울음소리였던 새 — 광릉숲 크낙새 이야기
[출처] 남양주시청홈페이지 > 남양주캐릭터 > 크낙새캐릭터 중. “환영.JPG”

 

 

 

 

이름에 뜻이 없다, 소리만 있다

 

크낙새라는 이름은 이 새가 우는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크낙 크낙' 또는 '클락 클락' 하고 우는 소리에서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북한에서는 문화어로 '클락새'라 부르고, 예전 광릉 일대에서는 '콜락새'라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같은 새인데 사람이 들은 소리에 따라 이름이 조금씩 달라진 것입니다.

 

사실 우리말에는 이런 작명이 드물지 않습니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두드리는 '딱딱' 소리에서, 뻐꾸기는 '뻐꾹' 하는 울음에서, 소쩍새는 '소쩍 소쩍' 하는 소리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크낙새도 그 계보에 있습니다.  다만 다른 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딱따구리도 뻐꾸기도 지금 우리 곁에서 울고 있지만, 크낙새의 울음소리는 이제 남한의 숲에서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남았는데 그 이름을 만든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왕의 무덤이 만든 숲에, 새가 깃들다

 

크낙새 이야기는 광릉숲을 빼놓고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앞서 광릉숲 편(No.10)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숲은 1468년 세조의 능인 광릉이 들어선 뒤 능림(陵林)으로 지정되어 나뭇가지 하나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받았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이어진 이 금기 덕분에 광릉숲은 수백 년 된 큰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는 숲으로 남았습니다.

 

왕실이 숲을 지킨 목적은 물론 새가 아니었습니다.  능을 지키고 능에 쓸 나무를 기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만들어진 환경이, 공교롭게도 크낙새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왕의 무덤이 우연히 새 한 종의 마지막 피난처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백 년 넘은 나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새

 

크낙새는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새로, 몸길이가 45~46cm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 딱따구리 종류 가운데 가장 큰 축에 듭니다.  온몸이 광택 있는 검은색이고 배는 흽니다.  수컷은 이마부터 머리꼭대기, 뺨선까지 다홍색 깃털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어 한눈에 구분됩니다.  암컷에게는 이 붉은색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 새가 요구하는 집입니다.  크낙새는 100년에서 300년쯤 자란 큰 나무나 반쯤 죽은 나무의 줄기, 그것도 지상 10m 안팎 높이에 타원형 구멍을 뚫어 둥지를 만듭니다.  새끼에게 먹이는 먹이도 특이해서, 조사에 따르면 소나무좀 종류의 애벌레가 88.7%, 개미와 개미알이 10.3%를 차지했습니다.  오래된 큰 나무와 그 나무에 깃들어 사는 벌레가 함께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새인 것입니다.  크낙새가 왜 광릉숲에만 마지막까지 남았는지, 그리고 왜 결국 사라졌는지가 이 한 문장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새보다 숲이 먼저 문화유산이 되었다

 

1962년 12월 7일, '광릉 크낙새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순서입니다.  새 자체가 아니라 새가 사는 '장소'가 먼저 국가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지정 구역은 포천시와 남양주시에 걸친 다섯 개 면에 이릅니다.  크낙새는 집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새였고, 당시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새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197호로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68년 5월 31일이었습니다.  당시 지정 사유에는 '지구상에서 한반도 중부지역에만 생존하는 진귀한 새'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과 일본이 과거 대륙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자료라는 학술적 가치가 함께 적혔습니다.  크낙새는 대마도에서도 서식 기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크낙새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이기도 합니다.

 

 

 

매년 한 쌍, 해마다 다른 나무에 새 구멍을 뚫었다

 

광릉숲에서 크낙새의 번식이 확인된 기록은 생각보다 구체적입니다.  1974년 한 쌍이 이곳에서 번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1979년부터는 번식 생태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국립수목원 자료에 따르면 매년 한 쌍이 해마다 다른 둥지를 이용해 번식해 왔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매년 '한 쌍'이라는 표현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광릉숲이 크낙새를 지켜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숲조차 한 쌍밖에 품지 못할 만큼 이미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한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번식지가 이 숲 한 곳이었고, 그 숲 안에서도 한 쌍이 전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해가 언제인지조차 엇갈린다

 

그런데 크낙새가 언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는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문화재청 발표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서는 '1989년 광릉 크낙새 서식지에서 발견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적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 여러 기사에서는 '1993년 이후 광릉숲에서 확인되지 않는다'고 서술합니다.

 

두 연도 사이에 4년의 간격이 있는 셈인데, 어느 쪽이 맞는지 이 글에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이후로 공식 관찰 기록이 완전히 끊겼다는 사실입니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천연기념물 조류 조사에서 크낙새 목격 보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2011년에는 '20년 넘게 발견되지 않아 사실상 멸종'이라는 취지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름의 주인이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기록해 두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씁쓸한 대목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이 새를 지웠을까

 

크낙새가 사라진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함께 지목됩니다.  우선 6·25전쟁을 거치며 전국의 많은 숲이 불타고 베여 나갔습니다.  크낙새가 필요로 하던 100년 이상 된 큰 나무들이 대거 사라진 것입니다.  이후에도 연료용 벌채와 산업화, 도로 개설과 개발이 이어지며 노거수가 남아 있는 숲은 계속 줄었습니다.

 

여기에 희귀조를 노린 밀렵과 박제 수집도 원인으로 거론됩니다.  다만 특정 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단정할 만한 공식 조사 결과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한 종이 사라지는 과정은 대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여러 변화가 겹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2019년 봄,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

 

그런데 완전히 끝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19년 5월 3일, 서울 인근 산의 둘레길에서 한 시민이 낯선 새를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문화재청에 신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의 교차 확인 결과 '크낙새 암컷으로 추정된다'는 판단이 나왔고, 육안 조사와 녹음된 울음소리를 틀어 반응을 보는 플레이백 조사, 무인 카메라 설치가 이어졌습니다.

 

다만 그 이후 남한에서 크낙새 서식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는 발표는 찾아지지 않습니다.  이 소식은 '추정' 단계에서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어딘가에 한 마리쯤은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사라진 새를 다시 이야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휴전선 너머에는 아직 있다고 전해진다

 

크낙새는 남한에서만 사라졌을 뿐, 한반도 전체에서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황해도의 멸악산 일대 등지에 몇십 마리 안팎, 스무 쌍 정도가 남아 번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 역시 이 새를 귀하게 여겨 서식지의 벌목을 금지하고 인공 둥지를 설치하는 등 보호 조치를 취해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2005년에는 북한 방송에서 크낙새 서식 모습을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며,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닙니다.  남북 생물자원 교류를 통해 크낙새를 다시 들여와 복원하자는 논의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진전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하나인데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한쪽에서는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는 남아 있는 새.  크낙새의 처지는 그 자체로 한반도의 지난 70여 년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합니다.

 

 

 

새는 사라졌는데, 이름은 남았다

 

남양주시는 크낙새를 시조(市鳥)로 삼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는 '맑음이와 푸름이'라는 이름의 크낙새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써 왔습니다.  25년이 지나며 시민들에게 잊혀 가자, 남양주시는 2023년 캐릭터를 새로 단장하고 이름을 공모했습니다.  시민 1,473명이 참여한 공모 끝에 2023년 3월 10일 '크크와 낙낙이'라는 이름이 선정되었습니다.  크낙새의 '크'와 웃음소리 '크크', '낙'과 즐길 락(樂)을 합친 이름입니다.

 

'광릉 크낙새 서식지'라는 천연기념물 지정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새는 보이지 않는데 서식지는 여전히 국가가 지키는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언뜻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이렇게도 읽힙니다.  그 숲을 그대로 지켜 두는 한, 언젠가 돌아올 자리는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광릉숲이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며 계속 보호받고 있는 것도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 국립수목원(광릉숲):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415. 크낙새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숲으로, 산림박물관에서 광릉숲의 천연기념물 관련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 관람은 사전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하절기(4~10월)는 09:00 입장 시작·17:00 입장 마감, 동절기(11~3월)는 16:00 입장 마감이며, 관람은 각각 18:00·17:00까지입니다. 월요일과 새해 첫날, 설·추석 연휴, 1·2·12월의 일요일은 휴관합니다.
  • 일일 입장 인원은 평일(화~금) 5,000명, 토요일·공휴일 3,000명으로 제한됩니다.  다만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도보로 방문하는 경우, 또는 포천시·남양주시·의정부시 주민은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수준으로 안내되고 있으나, 방문 전 공식 누리집이나 전화(031-540-2000)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광릉(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크낙새 서식지를 만들어 낸 조선왕릉으로, 수목원에서 차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숲과 능을 함께 묶어 하루 일정으로 돌아보기 좋습니다.
  • 대중교통: 지하철 4호선·경춘선 등에서 광릉수목원 방면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 일반적입니다.  대중교통 이용자는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있어, 오히려 차를 두고 오는 편이 편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크낙새는 사람이 뜻을 담아 붙인 이름이 아니라, 새가 스스로 낸 소리를 사람이 받아 적은 이름이었습니다. 왕의 능을 지키느라 수백 년 보호된 광릉숲은 뜻하지 않게 이 새의 마지막 집이 되었고, 1962년에는 새보다 그 숲이 먼저 천연기념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벌채, 개발로 오래된 큰 나무가 사라지면서 크낙새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1989년인지 1993년인지, 마지막으로 본 해조차 정확히 기록해 두지 못한 채였습니다. 지금 남한에 남은 것은 이름과 캐릭터, 그리고 새 없는 서식지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남양주라는 땅 위에 남은 옛 지명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려 합니다. 화도, 조안, 수동—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무슨 뜻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름들입니다. 이 이름들은 어디서 왔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30편의 이야기 가운데 마지막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포털 — 천연기념물 광릉 크낙새 서식지
  • 위키백과 — 광릉 크낙새 서식지
  • 위키백과 — 크낙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크낙새
  • 국립수목원 — 광릉숲 생물상: 천연기념물
  • 오마이뉴스 — 광릉숲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사라진 천연기념물
  • 오마이뉴스 — 크낙새 보전 지금부터 준비해야
  • 경향신문 — 서울 인근 산에서 발견된 '멸종위기' 크낙새, 문화재청 시민 제보받아 현장 확인 중
  • MBC 뉴스데스크 — 크낙새, 완전히 멸종됐다…20년 넘게 발견 안 돼
  • 경기일보 — 남양주 마스코트 '크낙새' 25년만에 재탄생
  • 에너지경제 — 남양주시 크낙새 캐릭터 2.0 선봬…'크크-낙낙'
  • 국립수목원 — 예약 안내(관람시간·휴관일·입장 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