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D. 전설·지명유래

밤중에 들린 종소리, 알고 보니 물방울 소리 - 수종사, 종소리의 전설의 진실

pfinder903 2026. 9. 9. 15:25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D. 전설·지명유래 - 25

밤중에 들린 종소리, 알고 보니 물방울 소리였다 - 수종사, 종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의 진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중턱,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수종사(水鍾寺)라는 절이 있다.  '물 수(水)'에 '쇠북 종(鍾)'—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조선의 임금 세조가 한밤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에 잠을 깼고,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종은 없고 대신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절에서 나온 유물들의 제작 연대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전설이 말하는 시점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 어긋남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수종사의 진짜 역사가 더 흥미롭게 드러난다.

 

이번 글부터는 전설과 지명 유래를 다룬다.  수종사라는 절 자체에 대한 답사기는 앞서 예고한 대로 별도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니, 이번에는 '종소리 전설'이라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해서 살펴본다.

 

 

밤중에 들린 종소리, 알고 보니 물방울 소리였다 - 수종사, 종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의 진실

 

 

 

종소리에 잠을 깬 임금

 

전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1458년(세조 4년, 일부 자료에는 세조 5년인 1459년으로도 기록된다) 세조가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양수리(두물머리) 부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한밤중,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궁궐도 아니고 마을과도 떨어진 강가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였다.  세조는 신하들에게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게 했다.

 

 

 

바위굴 속 열여덟 나한과 물방울 소리

 

소리를 따라 산을 오르자 운길산 중턱에 바위굴이 하나 있었다.  굴 안에는 열여덟 나한상이 모셔져 있었고, 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히며 마치 종을 치는 듯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조는 이를 예사롭지 않은 일로 여겨 부처의 뜻이라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왕이 절을 짓고 이름을 내리다

 

세조는 이 자리에 절을 세우도록(혹은 이미 있던 절을 크게 다시 지었다고도 한다) 명했고, 물방울이 종소리를 냈다는 사연을 따라 '물 수(水)'와 '쇠북 종(鍾)' 자를 써서 수종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왕조 임금이 직접 절 이름을 지어준 사례로 전해지는 만큼, 이 전설은 수종사의 정체성 그 자체와 다름없다.

 

 

 

그런데 원래 있던 절이었다?

 

여기서 짚어볼 대목이 있다.  수종사는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반면 1458년 세조와 관련된 기록에는 '창건'이 아니라 '중창(重創)', 즉 이미 있던 절을 다시 크게 지었다는 표현이 쓰인다.  그러니까 세조가 이 절을 처음부터 새로 지었다 보다, 오래전부터 있던 작은 절 혹은 절터를 세조가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렇듯 '종소리 전설'과 '창건 시점'은 정확히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 글에서는 전설과 사실을 구분해 두고자 한다.

 

 

 

전설을 뒷받침하는 유물들, 그런데 연대가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수종사에 남아 있는 두 보물의 제작 연대다.  경내의 정혜옹주 사리탑(보물 제2013호)은 태종의 딸인 정혜옹주를 위해 세종 21년, 즉 1439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세조가 즉위(1455년)하기도 전, 종소리 전설의 배경이 되는 1458년보다도 19년이나 앞선 시기다.  반면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은 정작 1493년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어, 세조 시대(재위 1455~1468)보다 오히려 늦다.  다시 말해 전설 속 '세조가 종소리를 들은 그 해'에 딱 맞춰 만들어진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그보다는 왕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절을 후원해 온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실제로 1493년 팔각오층석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는 성종의 후궁들이 함께 발원한 불상들과, 훗날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발원한 불상까지 함께 발견되어, 조선 왕실이 한 세기 넘게 이 절을 꾸준히 챙겨 왔음을 보여준다.

 

 

 

세조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경내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세조가 절을 중창하며 기념으로 두 그루를 심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이 역시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며, 나무의 실제 나이를 정밀 측정한 공식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 다른 전설도 함께 전해진다

 

수종사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세조의 종소리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고려 태조 왕건 시절 우물 속에서 동종(銅鐘)이 발견되어 절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세조 전설만큼 널리 채택되지 않고, 신빙성을 뒷받침할 자료도 훨씬 적다.  어느 쪽이든 '물'과 '종'이 만나는 신비로운 사건에서 절의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뼈대만은 공통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동방 제일의 전망"—정약용과 초의선사, 그리고 차 한 잔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은 수종사를 두고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가는 전망"이라 평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다산 정약용이 이 절을 각별히 아껴 「유수종사기(遊水鍾寺記)」라는 글을 남겼는데, 정약용에게 수종사는 단순한 유람지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마재(능내리) 집 앞을 흐르는 강 건너로 늘 바라보던, 익숙하고도 각별한 산사였다.  대흥사의 초의선사와도 이곳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강 풍경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 인연을 계기로 수종사는 오늘날까지 한국 차 문화의 전승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 인연은 지금도 이어져, 경내의 다실 삼정헌에서는 방문객들이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며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다.

 

 

 

고종이 다시 세운 절

 

세조 이후로도 수종사는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다.  1890년에는 고종이 8천 냥을 지원해 절을 다시 크게 고쳤고, 이듬해인 1891년에는 추가 지원으로 불상 개금과 탱화 봉안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건물이 다시 지어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설이 아니라 풍경으로 다시 인정받다

 

2014년 3월 12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을 명승 제109호로 지정했다.  지정 사유는 종소리 전설이 아니라 이곳의 경관 그 자체였다.  두물머리로 두 강물이 합쳐지는 하천 경관과, 운길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및 서울 북동쪽 산지 경관이 뛰어나다는 점, 계절과 시간에 따라 신록·단풍·설경·일출·운무 등으로 표정을 바꾸는 경관 가치, 그리고 서거정·정약용·초의선사를 비롯해 겸재 정선 등 여러 문인이 이곳을 소재로 시와 그림을 남긴 역사문화적 가치가 함께 인정받았다.

 

 

 

 

지금 가볼 수 있는 정보

 

수종사는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북한강로를 따라가다 조안보건지소를 끼고 외길로 들어서면 주차장에 닿는데, 주차장에서 일주문과 미륵불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는 약 15분 남짓의 산길을 걸어야 한다.

 

관람료와 주차료는 무료이며 연중 개방한다.  경내의 삼정헌에서는 무료로 차를 마시며 두물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어, 산행이나 답사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운영시간이나 다실 이용 가능 여부는 방문 전 사찰에 문의해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글을 마치며

 

'세조가 물방울 소리를 종소리로 착각해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전설이지만, 실제로 경내에 남은 유물들의 연대를 하나하나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세조보다 앞선 시대의 사리탑, 세조보다 뒤에 만들어진 석탑, 그리고 그 사이사이 왕실 여인들의 발원까지 - 수종사는 어느 한 순간의 기적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왕실의 후원이 쌓여 만들어진 절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을 다 걷어내더라도, 이곳이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전망대라는 사실만큼은 시대를 넘어 한결같이 인정받아 왔다.

 

다음 글부터는 전설과 지명 유래의 나머지 이야기들 - 축령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천마산 지명 유래, 두물머리라는 이름에 담긴 뜻, 광릉숲의 크낙새, 남양주 옛 지명들—을 차례로 살펴보려 한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 수종사
  • 위키백과 —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 위키백과 —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 나무위키 — 수종사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 세계뉴스통신 —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명승 제109호 지정
  • Culture & History Traveling(dapsa.kr) — 남양주 수종사(명승),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경치가 아름다운 곳
  • 서울경제 — [休-운길산 수종사] 500살 은행나무 옆에서 두물머리를 품다
  • 여행을말하다(telltrip.com) — 세조가 직접 하사한 500년 은행나무 품은 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