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B. 문화유적 탐방

대한제국 황제릉을 걷다 - 홍유릉

pfinder903 2026. 9. 5. 10:15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5

대한제국 황제릉을 걷다 - 홍유릉

 

 

남양주 금곡동, 경춘선 금곡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조선 왕릉치고는 낯선 풍경의 능이 있다.  다른 능에서는 본 적 없는 정면 5칸짜리 커다란 건물이 능 앞을 지키고, 참도 양옆으로는 코끼리와 낙타 석상이 줄지어 서 있다.  앞서 이 블로그에서는 고종과 순종, 그리고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세워지고 무너져 갔는지를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의 무대였던 홍유릉이라는 공간 자체를 실제로 걸으며 살펴보려 한다.  왜 이 능은 조선의 다른 마흔 두 기 왕릉과 이렇게 다르게 생겼을까.  그리고 홍릉과 유릉 말고도, 이 넓은 능역 안에는 또 누가 잠들어 있을까.

 

 

 

대한제국 황제릉을 걷다 - 홍유릉

 

 

 

능이라기보다, 하나의 왕실 마을이다

 

홍유릉은 흔히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여러 무덤이 한데 모인 능역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함께 묻힌 홍릉(洪陵), 순종과 두 황후가 함께 묻힌 유릉(裕陵) 외에도, 영친왕 부부가 잠든 영원(英園)과 황세손 이구가 잠든 회인원(懷仁園), 그리고 의친왕과 덕혜옹주의 묘까지 한 울타리 안에 자리한다.  사적 제207호로 지정된 이 능역은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세대가 한자리에 모인, 남양주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유적이다.

 

 

 

명성황후의 죽음에서 시작된 자리

 

홍릉의 시작은 비극이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는 처음에는 서울 청량리(지금의 홍릉수목원 자리)에 '홍릉'이라는 이름으로 묻혔다.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며 황후로 추존되었고,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지금의 금곡동 자리로 옮겨져 고종과 합장되었다.  대한제국의 흥망과 두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짚고 넘어간다.

 

 

 

정자각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침전

 

조선 왕릉을 여러 곳 다녀본 사람이라면 홍유릉에서 가장 먼저 낯설게 느끼는 것이 능 앞 건물의 크기와 모양일 것이다.  세조의 광릉이나 정순왕후의 사릉 등 다른 능에는 대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T'자형 건물인 정자각이 제사 공간으로 서 있지만, 홍유릉에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훨씬 널찍한 침전(寢殿)이 대신 자리한다.  대한제국이 황제국을 표방하면서 중국 명나라 황제릉의 제도를 끌어와, 조선 왕릉의 전통적인 격식 대신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려 한 결과다.  능 하나가 나라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건축의 크기만으로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홍살문에서 침전까지, 처음 보는 짐승들의 행렬

 

침전으로 이어지는 참도 양옆에는 다른 조선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석상들이 늘어서 있다.  문석인·무석인 외에, 기린·코끼리·사자·해태 등 이국적인 동물의 석수(石獸)가 도열해 있는 모습이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이런 동물 석상 배치 역시 중국 황제릉의 격식을 따른 것으로, 전통적인 조선 왕릉이 봉분 둘레에 병풍석과 십이지신상, 석양·석호를 세워 능침을 지키게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처음 이 능을 찾는 사람들이 "여기가 정말 조선 왕릉이 맞느냐"고 되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릉, 겉보기엔 하나지만 속은 셋이다

 

홍릉 옆에 자리한 유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세 사람이 하나의 봉분 아래 각각 다른 방에 나뉘어 모셔진 '동봉삼실릉' 형식이다.  겉에서 보면 여느 합장릉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능침 안쪽 구조는 조선 오백 년 왕릉 역사에서 유일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유릉의 조성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1905년 순명효황후를 위한 원(園)으로 처음 조성되었다가 1907년 봉릉되었고, 순종이 1926년 승하하자 지금의 홍릉 옆자리로 옮겨져 합장되었다.  순정효황후는 그로부터도 한참 뒤인 1965년에야 합장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국가유산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유릉은 규모 면에서 홍릉보다 다소 작은 편이며, 능 앞을 지키는 석물 가운데 상당수가 아이바 히코지로 등 일본인 조각가의 손을 거쳐 석고 모형을 이용한 서양식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조선 왕릉이 대대로 이어 온 전통 조각 방식과는 다른 기법이다.  순종이 승하한 1926년은 이미 일제강점기 한복판이었던 만큼, 나라를 잃은 마지막 임금의 능마저 온전히 우리 손으로만 세울 수는 없었던 시대의 그늘이 이 석물들에도 배어 있는 셈이다.  고종·순종 부자와 대한제국의 최후에 얽힌 자세한 사연은 앞선 글에서 다루었다.

 

 

 

45년 만에 열린 오솔길, 영원

 

홍릉 비각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영친왕 이은(1897~1970)과 그의 부인 이방자(1901~1989)가 합장된 영원(英園)이 나온다.  고종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사실상 볼모처럼 끌려가 성장했던 마지막 황태자다.  1970년 영원이 조성된 이후 무려 45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다가,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5월 10일 제향일에 처음으로 시범 개방되었고 이듬해부터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일본 왕족 출신인 이방자 여사는 광복 후 남편과 함께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며 여생을 장애인 복지 사업에 쏟았다.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명혜학교와 지체장애인을 위한 자혜학교를 세워 오늘날까지도 두 학교의 설립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 이력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의 삶이 조선왕조실록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인물이었음을 새삼 일깨운다.

 

 

 

황세손이 잠든 회인원

 

영원 곁에는 이구(1931~2005)가 잠든 회인원(懷仁園)이 있다.  영친왕의 아들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미국인 아내와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한 뒤로는 주로 일본에서 지내다 2005년 도쿄의 한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이곳 영원 곁에 마련된 회인원에 안장되었다.  왕조의 마지막 세대가 국경과 시대를 넘나들며 살다 결국 이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덕혜옹주, 오빠들 곁으로 돌아오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1912~1989)도 이 능역 한쪽에 잠들어 있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 정략결혼을 겪고 오랜 세월 어려움을 겪으며 정신병원 생활까지 했던 그는, 1962년 김을한 기자와 영친왕비 이방자의 노력으로 3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9년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아버지와 오빠들이 있는 홍유릉 부속림에 묻혔다.  한 시대를 함께 건넌 고종의 자녀들이 결국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가을이면 사람들이 이 능을 찾는 이유

 

역사적 무게와는 별개로, 홍유릉은 남양주의 대표적인 단풍 명소로도 꼽힌다.  넓은 능역 곳곳에 조성된 산책로와 연못, 오래된 나무들이 가을이면 붉게 물들어 사진 애호가와 나들이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역사를 배우러 왔다가 산책을 하고 돌아가는 곳, 그것이 지금 홍유릉이 남양주 사람들에게 갖는 또 하나의 의미다.

 

 

 

가볼 수 있는 정보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금곡동)
  • 교통: 경춘선 금곡역에서 도보 약 15분
  • 관람시간: 하절기(3~10월) 09:00~18:30 · 동절기(11~2월) 09:00~17:30 (매표 마감은 관람 종료 1시간 전, 정확한 시간은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 확인 권장)
  • 휴무일: 매주 월요일
  • 입장료: 성인 1,000원 (경로·어린이 등 감면 기준은 홈페이지 확인)
  • 문의: 031-591-7043 (국가유산청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
  • 참고사항: 영원·회인원·의친왕묘·덕혜옹주묘가 있는 구역은 홍릉·유릉 일반 관람 구역과 별도로 관리되어, 상시 개방 여부나 관람 동선이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방문 전 궁능유적본부 누리집(royal.khs.go.kr)에서 확인을 권장한다.
  • 유의사항: 음식물·돗자리 반입 금지, 반려동물 출입 불가(장애인 보조견 제외)

 

 

 

글을 마치며

 

홍유릉은 하나의 능이 아니라,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세대가 대를 이어 모인 자리다.  정자각 대신 침전, 병풍석 대신 이국적인 석수 행렬 - 건축 하나하나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뀐 시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능역 안쪽 오솔길을 따라가면 영친왕과 이구, 덕혜옹주까지,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마지막 자리를 만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홍유릉에서 멀지 않은 곳, 세조의 며느리이자 조선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정순왕후가 잠든 사릉(思陵)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 [조선왕릉의 비밀 ⑭] 홍유릉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 홍릉·유릉 관람정보
  • 경기도뉴스포털 — 남양주의 대표 단풍명소 세계문화유산 홍유릉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 잠든 '영원' 첫 개방
  • 위키백과 — 홍유릉
  • 위키백과 — 이구(1931년)
  • 위키백과 — 덕혜옹주
  • 나무위키 — 홍유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