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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이 막히고 기차가 멈춘 자리에서 — 정약용의 고향, 마재마을의 근현대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3물길이 막히고 기차가 멈춘 자리에서 — 정약용의 고향, 마재마을의 근현대 경춘선 운길산역이나 팔당대교를 지나 조안면 능내리로 접어들면, 길가에 늘어선 카페와 주말이면 줄지어 선 자동차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정약용이 태어나고, 강진 유배에서 돌아와 여생을 보낸 마재마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진다. 200년 전 한강 뱃길로 이어지던 이 조용한 강마을은, 그 사이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정약용 개인의 생애나 여유당이라는 건물 하나가 아니라, 마재마을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난 100여 년 동안 무엇을 겪었는지를 따라가 보면, 뜻밖에도 큰물과 철도와 댐, 그리고 규제라는 낯선 이름들이 등장한다. ..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1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에, 리프트가 걸리다 - 천마산과 남양주 근현대 개발사 남양주에서 가장 높은 산, 천마산(天摩山)에 한때 스키 리프트가 다섯 기나 걸려 있었다고 하면 믿어질까. 지금은 등산객들이 능선을 따라 조용히 오르내리는 이 산 남쪽 기슭에는 1980년대 초부터 2020년대 초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스키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이곳은 왜, 그리고 어떻게 문을 닫게 되었을까. 신령한 산으로 여겨지던 천마산이 한때 위락지로 개발되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산에 새겨진 남양주의 근현대 개발사를 따라가 본다.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 천마산이라는 ..

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21고개 하나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 6·25전쟁, 남양주의 시간 남양주 시민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46번 국도, 호평동에서 화도읍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마치고개’라는 소박한 이름의 고개가 있다. 지금은 차들이 무심히 오가는 이 고개 아래, 76년 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약용의 형제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하고, 왕들의 무덤이 들어서고, 근대 철도가 마을의 모습을 바꿔놓았던 이 땅에도 6·25전쟁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다만 그 기록은 유적지의 안내판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의 남양주—당시에는 아직 ‘양주군’의 일부였던 이 땅이—전쟁의 세 해(1950~1953)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

기차가 지나간 자리, 마을이 달라졌다 — 경춘선과 함께 변한 남양주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19기차가 지나간 자리, 마을이 달라졌다 — 경춘선과 함께 변한 남양주 남양주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경춘선 철길에는 별내, 퇴계원, 사릉, 금곡, 평내호평, 천마산, 마석까지 일곱 개의 역이 있다. 지금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평범한 전철 노선이지만, 이 철길이 놓인 지 이제 90년 가까이 되었다. 그 사이 남양주의 여러 마을은 이 철길을 따라 생기고, 자라고, 때로는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기차가 지나가야 도청을 지킨다? 경춘선의 탄생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 지역 유지 12명이 1936년 직접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세워 철도를 놓았..

'남양주'라는 이름조차 없던 시절 — 일제강점기, 이 땅 사람들의 삶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C. 근현대사 이야기 - 19'남양주'라는 이름조차 없던 시절 — 일제강점기, 이 땅 사람들의 삶 지금 우리가 '남양주'라고 부르는 이 땅은, 100여 년 전에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정약용의 마재마을도, 세조가 잠든 광릉도, 지금의 남양주 어느 동네도 당시에는 모두 '양주군'이라는 훨씬 넓은 고을의 일부였다. 그 시절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채로 논밭을 갈았고, 철길을 놓았고, 어느 봄날에는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섰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가 다뤄온 조선시대 인물과 유적들의 이야기를 한 세기 뒤로 당겨오면, 바로 이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그때는 '남양주'가 아니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부와 군, 면을 대대적으로 통폐합..

산사에 들렀는데 궁궐을 만나다 — 흥국사, 남양주에 남은 왕실의 원찰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8산사에 들렀는데 궁궐을 만나다 — 흥국사, 남양주에 남은 왕실의 원찰 수락산 자락, 남양주시 별내동에 자리한 흥국사에 들어서면 조금 낯선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여느 산사처럼 소박한 법당을 기대했다면 특히 그렇다. 지붕 위에는 궁궐에서나 볼 법한 잡상이 줄지어 앉아 있고, 경내 한켠에는 절집이라기보다 양반가 저택이나 서원 강당에 가까운 커다란 건물이 서 있다. 왜 산속의 절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답은 이 절의 출발점에 있다. 흥국사는 처음부터 평범한 사찰이 아니라, 왕이 되지 못한 어느 아버지를 위해 지어진 원찰이었다. 그 사연을 따라가 보면 조선 후기 왕실이 이 작은 산사와 어떻게 인연을 맺어 왔는지가 드러난다. 임금..

나라가 지어준 집, 반세기 동안 두 예술가가 지켜낸 집 — 남양주 궁집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7나라가 지어준 집, 반세기 동안 두 예술가가 지켜낸 집 — 남양주 궁집 남양주시 삼패동, 아파트 단지와 도로 사이에 담장 높은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궁집'. 누구의 집이었느냐고 물으면, 답은 더 흥미로워진다. 조선의 임금이 직접 나라의 재목과 목수를 보내 지어준 집이라는 것이다. 궁궐도 아니고 대군의 저택도 아닌, 한 옹주가 시집가서 살 집을 나라가 직접 지어주었다니 — 왜 그랬을까. 그런데 이 집의 사연은 조선시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 한 예술가 부부가 사재를 털어 이 집을 지켜냈고, 21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2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집을 스쳐 간 사람들의 이..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남편과 떨어져 잠들다 — 사릉 답사기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6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남편과 떨어져 잠들다 — 사릉 답사기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야트막한 능선 하나가 솟아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 이곳이 사릉(思陵), 단종의 왕비였던 정순왕후 송씨가 잠든 자리다. 그런데 조선왕릉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조선의 왕릉은 대부분 왕과 왕비가 나란히, 혹은 가까운 언덕을 사이에 두고 함께 묻혀 있다. 그런데 정순왕후의 남편인 단종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세 시간 걸리는 강원도 영월, 장릉에 홀로 있다. 부부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 묻힌 조선왕릉은 이 한 쌍이 유일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 답은 사릉이라는 공간 자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