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B. 문화유적 탐방

나라가 지어준 집, 반세기 동안 두 예술가가 지켜낸 집 — 남양주 궁집

pfinder903 2026. 9. 7. 13:30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B. 문화유산 탐방기 - 17

나라가 지어준 집, 반세기 동안 두 예술가가 지켜낸 집 — 남양주 궁집

 

 

 

남양주시 삼패동, 아파트 단지와 도로 사이에 담장 높은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궁집'. 누구의 집이었느냐고 물으면, 답은 더 흥미로워진다. 조선의 임금이 직접 나라의 재목과 목수를 보내 지어준 집이라는 것이다.  궁궐도 아니고 대군의 저택도 아닌, 한 옹주가 시집가서 살 집을 나라가 직접 지어주었다니 — 왜 그랬을까.

 

그런데 이 집의 사연은 조선시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 한 예술가 부부가 사재를 털어 이 집을 지켜냈고, 21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2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집을 스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나라가 지어준 집, 반세기 동안 두 예술가가 지켜낸 집 — 남양주 궁집

 

 

 

 

이름부터 남다른 집, 궁집

 

'궁집'이라는 이름은 정식 문화재 명칭이면서 동시에 이 집의 내력을 그대로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는 막내딸이 시집갈 집을 지으면서 나라에서 재목과 목수를 보내 완성하도록 했고, 그래서 이 집은 '궁에서 지어준 집', 곧 궁집으로 불리게 되었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30호로 지정되면서 이 별칭이 공식 이름으로 굳어졌다.  왕실이 딸을 시집보내며 살림집까지 직접 지어준 사례가 전국에 여럿 남아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 집이 지닌 격을 짐작할 수 있다.

 

 

 

 

열두 살 신부, 옹주가 되어 시집가다

 

이 집의 주인공은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다.  1754년에 태어난 그는 1764년 구민화와 정혼했고, 이듬해인 1765년 혼례를 올렸다.  열 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남편 구민화는 혼인과 함께 '능성위'라는 작위를 받았다.  왕실의 부마가 된 것이다.  궁집은 이 혼례를 전후해 짓기 시작해, 화길옹주가 세상을 떠나는 1772년 무렵까지 계속 손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과 같은 격식, 그러나 단청만 없다

 

궁집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배치를 따르면서도 왕실이 지어준 집답게 격이 다르다.  안채는 튼 ㅁ자형으로,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에 마루를 깔아 구성했다.  사랑채 누마루는 처마선이 날렵하게 떨어지고,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높이 쌓아 위엄을 더했다.  단청만 칠하지 않았을 뿐 궁궐 건물에 버금가는 격식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중문을 두어 남녀의 생활 공간을 엄격히 나눈 것도 당시 유교적 예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열아홉, 짧았던 삶

 

화길옹주는 혼인한 지 오래지 않아 1772년, 열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남긴 채였다.  아버지 영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그의 죽음 이후 친정어머니인 숙의 문씨는 정조 즉위 이후 궁중의 여러 비위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는 등 순탄치 않은 말로를 맞았다.  화길옹주는 그 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짧은 삶과 그 뒤에 이어진 집안의 곡절은, 화려해 보이는 궁집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또 다른 얼굴이다.

 

 

 

 

예술가 부부가 지켜낸 260년

 

궁집이 오늘날까지 원형을 지키며 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20세기의 숨은 공로자가 있다.  화가 권옥연과 그의 부인이자 연극인 이병복이다.  두 사람은 1970년 무렵부터 사재를 들여 이 집을 사들이고 보존해 왔다.  문화재로 지정만 되었을 뿐 관리 주체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 개인의 힘으로 반세기 가까이 옛집의 목조와 기단, 마당을 지켜낸 셈이다.

 

 

 

 

무의자, 이름을 남기다

 

권옥연 화백의 호는 '무의자(無衣子)', 풀이하면 '옷 없는 사람' 혹은 '모든 것을 벗어버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부는 이 호를 딴 무의자문화재단을 세워 궁집을 비롯한 전통 가옥과 부지를 관리해 왔고, 2019년 5월 마침내 이 땅과 건물을 남양주시에 기부채납했다.  개인이 지켜온 문화유산이 다시 공공의 몫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천 년을 걷다, 궁집 곁의 다른 집들

 

궁집 경내에는 다른 곳에서 옮겨온 옛집 몇 채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중에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 송병준의 옛집으로 전해지는 '용인집', 조 대비(신정왕후)의 친정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는 '군산집', 그리고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을 모신 사당도 함께 있다고 한다.  정식 문화재로서의 이력이나 세부 내력은 자료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르므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일대를 걷다 보면 고려에서 조선, 그리고 근대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를 함께 만나게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닫혔던 문이 열리다

 

기부채납 이후에도 궁집은 곧바로 문을 열지 못했다.  남양주시는 주변 둘레길을 정비하고 노후한 시설을 보수 했으며, 지하 2층 규모의 주차장을 새로 짓는 등 관람 기반을 갖추는 데 6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  그렇게 2025년 6월 20일, 궁집은 준공식과 함께 다시 일반에 공개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지 40년이 넘도록 개인 소유로 남아 있던 집이 비로소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남양주시는 앞으로 화길옹주의 혼례 과정을 재현하는 프로그램과 음악회,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통해 이곳을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꾸준히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왕실이 지어주고, 예술가 부부가 지켜내고,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이 집의 다음 이야기는 아직 쓰이는 중인 셈이다.

 

 

 

 

가볼 수 있는 정보

 

재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방문 전 운영시간과 프로그램 일정을 남양주시 문화관광과에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구,삼패동) (평내·호평 생활권 인근)
  • 관람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 휴관일: 매주 일요일·월요일
  • 입장료: 무료(2025년 재개방 초기 기준, 향후 조정 가능성 있음)
  • 문의: 남양주시 문화관광과 문화유산팀
  • 주변에 지하 주차장이 새로 마련되어 있어 자가용 이용도 편리하다

 

 

 

 

글을 마치며

 

궁집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지켜진 집이다.  260년 전에는 나라가 옹주를 위해 지어주었고, 그로부터 200년 뒤에는 두 예술가가 사재를 들여 지켜냈다.  그리고 이제는 남양주시와 시민들의 몫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짧게 살다 간 화길옹주는 알지 못했겠지만, 그가 신부로 들어섰던 이 집은 이렇게 세 번의 손길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다음 글에서는 남양주에 남은 또 하나의 조선 왕실 원찰, 흥국사를 찾아간다.  봉선사가 세조의 원찰이었다면, 흥국사는 또 다른 왕실 인물과 인연을 맺은 절이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포털 — 국가민속문화유산 남양주 궁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남양주 궁집(南楊州 宮집)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 궁집
  • 다음뉴스(전재) — 영조 막내딸 살던 '남양주 궁집' 내일부터 개방
  • 딜라이브뉴스 — 숨어 있는 보물 '궁집' 재개방 [남양주]
  • 남양주뉴스 — [남양주뉴스] 기부 6년 만… '궁집' 새롭게 문 열다
  • 경기일보 — [명가와 고택을 찾아서] 9. 남양주 궁집
  • 아주경제 — 미술계 멋쟁이 '무의자'(無衣子) 권옥연화백 별세
  • 위키백과 — 화길옹주 (생애 교차 확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