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A. 역사 인물 8

정약용 생가 옆에, 왜 이 집이 들어섰을까?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8정약용 생가 옆에, 왜 이 집이 들어섰을까? - 실학박물관과 조선 후기 지식인들 마재마을에서 여유당과 정약용 묘소를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옆에 낯선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회백색 외관에 걸린 현판에는 '실학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정약용 유적지에 온 김에 지나치듯 들르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이 건물이 하필 여유당 담장 곁에 자리 잡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앞선 글들에서 정약용 개인의 삶을, 세조·정순왕후·고종과 순종이라는 조선 왕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번 글에서는 시선을 조금 넓혀, 정약용이라는 한 사람을 만들어 낸 더 큰 흐름 — 약 200년에 걸쳐 이어진 '실학'이라는 지적 운동 전체를 살펴보려 한다. 역사 ..

조선의 능은 왜 갑자기 황제의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 고종·순종과 홍유릉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7조선의 능은 왜 갑자기 황제의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 고종·순종과 홍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경춘선 금곡역에서 걸어서 십 분 남짓한 자리에 다른 조선왕릉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의 능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 능침으로 다가가는 길에 정자각 대신 우람한 침전이 서 있고, 참도 양옆으로는 기린과 코끼리, 사자, 해태 같은 낯선 동물 석상들이 도열해 있다. 조선의 왕과 왕비를 모신 마흔 곳 넘는 능 가운데 이런 모습을 한 곳은 이곳, 홍릉과 유릉뿐이다. 홍릉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과 명성황후가, 유릉에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과 두 황후가 잠들어 있다. 두 능을 합쳐 흔히 '홍유릉'이라 부른다. 왜 이 두 능만 조선왕릉의 전통적인 격식을 벗..

열다섯에 왕비가 되어, 예순넷 해를 홀로 견디다— 정순왕후와 사릉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6열다섯에 왕비가 되어, 예순넷 해를 홀로 견디다— 정순왕후와 사릉 열다섯 살에 왕비가 되고,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남편을 잃고, 그 뒤로 예순네 해를 더 살아야 했다면 어떤 심정일까. 조선 왕비들 가운데 재위 기간은 가장 짧았지만(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수명은 가장 길었던 여인이 있다.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다. 남양주시 진건읍, 야트막한 산자락 소나무 숲 사이에 자리한 사릉(思陵)이 바로 그의 무덤이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생각할 사(思)'. 누군가를 평생 그리워하다 간 여인에게 붙은 능호다. 그가 그리워한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영월 땅에 홀로 묻힌 남편 단종이었다. 왕..

왕위를 빼앗은 임금은 왜 검소한 무덤을 남겼을까 — 세조와 광릉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5왕위를 빼앗은 임금은 왜 검소한 무덤을 남겼을까 — 세조와 광릉 남양주시 진접읍, 울창한 숲 한가운데 조선 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가 잠들어 있는 광릉이 있다. 이 숲은 무려 550년 가까이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채 보존되어 왔다. 그런데 이 왕은 다름 아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조선 역사에서 가장 논쟁이 많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피로 얼룩진 권력 다툼의 승자가 죽어서는 어째서 그토록 검소한 유언을 남기고, 뜻하지 않게 자연을 지켜낸 숲을 후대에 물려주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세조라는 인물의 생애와, 그가 남양주에 남긴 흔적인 광릉과 광릉숲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역사적 배경- 수양대군..

유배객은 왜 지방관의 교과서를 썼을까 — 정약용과 목민심서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4유배객은 왜 지방관의 교과서를 썼을까 — 정약용과 목민심서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책이 있다. 《목민심서(牧民心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은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 즉 '목민관(牧民官)'이 백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짚은 실무 지침서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쓴 정약용은 벼슬은커녕 죄인의 몸으로 전라도 강진 땅에 갇혀 있었다. 한 번도 고을 수령을 맡아본 적 없는 유배객이, 어떻게 이토록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방 행정의 교과서를 써낼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18년이라는 시간 속에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신유박해로 삼형제의 운명이 갈..

형제의 이름으로 순교하다 — 정약종과 마재성지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3형제의 이름으로 순교하다 — 정약종과 마재성지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호를 곁에 낀 작은 마을 마재에 가면 여느 성당과는 사뭇 다른 성당 하나를 만나게 된다. 콘크리트와 첨탑 대신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성당, 그리고 마당에 서 있는 예수상과 성모상은 놀랍게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다. 이름도 낯설다, '거룩한 부르심의 땅 성가정 마재성지'. 어째서 이 조용한 강마을에, 그것도 한옥으로 지은 성지가 자리하게 되었을까. 답은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丁若鍾)에게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여유당에서 태어난 정약용과,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남긴 둘째 형 정약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이 형제들 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이 신앙을..

형은 바다로, 아우는 강진으로 — 정약전과 자산어보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2 형은 바다로, 아우는 강진으로 — 정약전과 자산어보 정약용이 강진에서 그 오랜 유배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뜻밖에도 그 답은 그가 유배 이후 단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한 한 사람에게 있다. 바로 손암(巽庵) 정약전, 그의 둘째 형이다. 나주 율정점(밤남정)의 한 주막에서 눈물로 헤어진 두 형제는 그 뒤로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편지로만 그리움을 나누었고, 형은 “어둡고 무섭다”고 느껴 이름조차 바꿔 부른 섬, 흑산도에서 조선에 없던 책 한 권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 책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으로 꼽히는 『자산어보(玆山魚譜)』다. 남양주 마재마을에서 태어나 다산 정약용과 함께 자란 ..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자리,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남양주 역사·문화 이야기 · A. 역사 인물 이야기 - 1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자리,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규장각의 젊은 학자가 어느 날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채에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유당(與猶堂)'. '여유'는 흔히 쓰는 '여유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라'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잘나가던 사람이 왜 하필 이런 이름을 골랐을까요? 그 답은 바로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마을에 있습니다. 두물머리 옆 마재마을에서 나고 자라다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재마을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바로 ..